제목 | 슐라이어마허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감정에 관련된 개념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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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제목 | the Study of Concept Related 'Emotion' in Schleiermacher and Jonathan EdwardsGO |
저자 |
노승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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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환_ 2011_춘계학술대회_논문집-2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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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구분 | 일반논문 | 신학/철학
발행 기관 | 춘계학술대회 |
발행 정보 | |
발행 년월 | |
국문 초록 | 본 논문은 슐라이어마허와 조나단 에드워즈가 감정과 관련해서 사용한 개념들을 비교함으로 내재적 신학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목적을 가진다. 슐라이어마허는 형이상학과 도덕이 차지했던 종교의 영역을 직관과 감정으로 재정의했다. 그는 종교를 인간이 우주,즉 신을 직관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로 인해 감정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틀에서의 인간은 수용자이다. 개별사물이 인간에게 인식을 촉발하기 때문에 인간은 우주나 사물들을 인식할 수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인간 영혼의 구성요소를 지성과 정서로 정의한다. 에드워즈에게 지성은 이해하며 사유하는 기능이다. 정서의 주된 기능은 경향성이다. 정서는 지성의 결과물, 즉 인간이 이해한 것을 토대로 하여 인간에게 감정적 변화를 주며, 경향성을 부여한다. 이 경향성이 인간의 외면적으로 표출이 될 때 그것은 의지와 관련을 맺게 된다. 에드워즈는 이해를 토대로 하지 않는 인간의 경향적 변화를 격정이라 부른다. 슐라이어마허의 체계 속에서 인식의 주체자는 외부의 사물이다. 수용자인 인간이 인식에 있어서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은 인간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 에드워즈에 체계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인간은 인식의 수용자이다. 하지만 이 모델 은 본질적으로 이해를 토대로 한 올바른 행위를 야기하며 당위성을 제공하기에 슐라이허마허의 것과는 차별성을 지닌다. 슐라이어마허에게서의 감정은 절대적 권력을 지닌다. 무한자를 인식했다는 것에 대한 판단기준은 개별적 인간의 감정에 달려있다. 하지만 에드워즈에게서의 감정적 변화는 경향성을 줄 수는 있지만, 이해의 여부에 따라 옳고 그름이 결정된다.본 논문은 에드워즈의 방법론을 지향점으로 삼아 내재적 신학의 발전 가능성을 모색한다. |
영문 초록 | |
키워드 | 슐라이어마허, 조나단 에드워즈, 내재적 신학, 감정, 직관, 우주, 무한자, 정서, 격정, 경향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