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8세기 이전 창세기 해석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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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제목 | |
저자 |
정중호 (계명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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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정중호(계명대) [논문] 18세기 이전 창세기해석의 역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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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구분 | 일반논문 | 세계관기초
발행 기관 | 춘계학술대회 |
발행 정보 | (통권 21호) |
발행 년월 | 2014년 05월 |
국문 초록 | 16세기 말부터 중국에서 선교를 시작한 천주교 신부들은 천지창조를 설명하면서 선교를 시 작하였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전파될 때 가장 먼저 이야기 되는 것이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고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저술한 교리서와 과학기술 서적 들이 속속 조선으로 전래되어 여러 선비들이 읽게 되었고 이 서적들에 대해서 토론을 하였다. 안정복(1712-1791)은 주로 선교사들이 저술한 서학서가 조선에 들어와서 읽혀지는 상황을 다 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한역서학서의 조선도입은 17세기 초부터인데 서양서는 선조 말년부터 이미 동에 들어와 명경석유 (名卿碩儒)로 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이것을 보기를 마치 제자(諸子)나 도불(道佛)에 속하는 것 같 이 하고 서실의 완상물(玩賞物)로 비치하였다.1) 이렇게 천지창조를 포함한 창세기의 내용이 교리서 혹은 과학기술서 혹은 기독교 비판자들 의 글을 통해 16세기 말, 늦어도 17세기 초부터 조선에 소개되었고 해석되고 있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한국의 구약 해석사를 소개할 때는 여전히 1900년대부터 시작하고 있다.2) 한글 로 구약 전체가 번역되어 출판한 것이 1911년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성경 해석사를 재구성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조선의 선비들과 관리들 의 공식 문자는 한자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문성경은 중국성경임과 동시에 한국성경이기도 하였다. 발췌번역 성경과 교리서 뿐 만 아니라 성경 내용을 포함하는 과학 기술 서적도 한문 으로 저술된 것은 조선의 서적으로 취급되어 널리 읽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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