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
---|---|
영문 제목 | |
저자 |
양희석 |
다운로드 |
[경제] 양희석 (요약본)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pdf
(294 KB)
|
논문 구분 | 일반논문 | 경제/경영
발행 기관 | 기독학문학회 |
발행 정보 | (통권 32호) |
발행 년월 | 2015년 11월 |
국문 초록 | Ⅰ. 서언 우리는 소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먹지 않고,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또 자신의 필요를 위해 물품을 사용해야 한다. 오늘날 소비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구성하는 주요한 한 요소가 되고 있다. 즉,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생산된 것은 소비되어야 경제가 원활하게 운영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비란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비가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과연 소비가 이대로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엔 소비가 미덕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경기부양을 위해 소비 촉진책을 적극적으로 도모하고 있고, 기업에서도 소비를 미화하며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그로 인해 가계나 개인은 자칫 과소비를 하게 되고, 불필요한 상품을 낭비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가계 빚에 허덕이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은 소비주의의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도 소비주의로 인한 폐단이 심각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자본주의 경제의 소비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소비이념인 소비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을 해 보고, 그 폐해를 살펴보고, 그것의 극복방안을 강구해 보고자 한다. 나아가 오늘날 기독인으로서 어떻게 소비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모색해 보고자 한다. Ⅱ.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소비주의의 출현 대규모의 소비가 사회의 기본적인 특징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19세기 유럽의 자본주의적 상업화 과정에서 수반된 대규모의 경제, 정치, 사회적 변화는 대전환을 가져왔다. 2차 세계 대전 후 유럽의 경제가 재건되고 호황을 누리면서 유럽에 본격적인 소비사회가 출현하였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소비주의가 지배하는 소비사회의 출현 시기를 1950년대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소비사회의 발전은 개성표출을 숭배하는 낭만주의정신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귀족들은 소비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다시 말하면, 생산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연결되어 있다면, 소비는 낭만주의 윤리와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Peter Corrigan, 2009). 이와 같이 유럽의 낭만주의적 사상으로부터 생성된 소비주의는 섬기고 사랑하고 베푸는 것 대신 차지하고 즐기는 것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기독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가치 체계이다(Gonzalez, 2011). 소비주의는 호경기와 불경기 모두에 걸쳐 근대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주된 이데올로기다(Bocock, 2003). 즉, 오늘날 소비주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우리의 소비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반면에 소비는 성스러움을 경험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백화점, 쇼핑센터, 스포츠 경기장은 소비사회의 성전이 되었다(Baudrillard, 2014). Bocock은 “소비주의는 교회전통에 대립하며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오늘날 소비주의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소비의 주체로서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임성빈 외: 박성관, 2008). 2. 우리나라 소비주의의 출현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우상의 하나가 되고 있는 소비주의는 자본주의 산업 사회라는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태동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비주의가 등장하게 된 계기는 1980년대 말 과소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할 무렵이라고 볼 수 있다(김준우, 1996). 1986년 이후 급격한 임금 상승과 소득 증대로 인해 중산층이 확대되고, 소비가 조장되고, 미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소비주의가 우리나라에서 강력한 우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체면 의식과 허례허식주의 뿐 아니라, 60년대 이후 지속적인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급격한 사회 변동을 초래하게 된 데 연유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60년대 이후 어려운 경제 성장을 통해 급격한 산업사회와 사회적 변혁을 거치면서 소비주의라는 경제적, 사회적 우상에 의해 지배당하고 만 것이다. 이로 인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소비주의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3. 기업 마케팅의 목표 소비주의는 종종 기업의 마케팅활동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 Drucker 교수는 마케팅을 “소비자를 잘 이해하고 소비자의 욕구에 일치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 공급하여 소비자의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킴으로써 소비자의 자발적인 구매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기업은 소비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소비자의 요구, 욕구와 행동을 면밀히 조사하며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양희석, 2008). 오늘날 기업은 소비자의 만족을 넘어 이미지의 실현을 도모하고 있다. 소비자는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 실현을 위해 소비한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물건을 소유하기 보다는 그 물건이 의미하는 이미지나 상징의 기호를 구매한다. 그것을 통해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거나 성공을 돋보이게 한다(Baudrillard, 2014). 또한 기업은 소비자 만족을 넘어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가치는 성찰되거나 사색된 가치가 아니라 소비되는 가치일 뿐이며 조작된 가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임성빈 외: 조영훈, 2008). 기업은 마케팅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광고나 각종 판촉 행사를 통해 소비를 조장하고 있다. 소비자는 기업의 광고에 의해 조정되고, 종속적으로 소비하게 된다. 소비자는 소비의 주체이지만, 동시에 소비의 대상이요 소비의 노예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4. 소비주의의 문제점 오늘날 많은 소비자들은 소비주의에 물들어 소비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심지어 많은 기독교인들조차 자신도 모르게 소비주의를 신봉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미 교회 안에도 소비주의가 깊숙이 침투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만연한 소비주의는 궁극적으로 한 인간으로서의 소비자를 만족시켜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많은 사회적, 환경적 폐해를 낳고 있는 것을 큰 문제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임성빈, 2008). 우리나라는 소득과 자산, 직업과 소득, 주거 등으로 평가하는 물질적 삶의 측정 영역에서 36개(OECD34 개국+브라질, 러시아)국가 중 20위였다. 반면 건강상태, 일과 삶의 조화, 교육과 기술, 사회적 관계 등 비물질적 가치를 포함한 삶의 질은 이보다 9단계 낮은 29위에 머물렀다(머니투데이, 2015, 9월 30일자, ‘OECD BLI 한국인 삶의 질). 이 지표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삶의 만족도가 세계 최하위를 보인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 사회에 소비주의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다. 첫째, 소비주의는 소비자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다고 하지만,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 둘째, 소비주의는 욕구 조작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을 타율적 존재로 만든다. 소비주의는 소비자를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자아에 대한 성찰을 차단시킴으로써 주체적인 자기 성장을 방해한다. 셋째, 소비주의는 인간성을 소외시키고 있다. 소비주의로 인해 소비자는 진정한 자아실현과 자아 정체성 확립에 실패하고, 참된 인간성을 상실하고, 결국 소외감에 빠지게 된다(양희석, 1993). 넷째, 소비주의는 무분별한 과소비를 조장하여 지구 환경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Ⅲ. 소비주의에 대한 대응 방안 오늘날 소비주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기독신앙을 대체하려 하고 있다(Gonzalez, 2011).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소비주의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 대신 끝없는 소비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 다. 하나님 대신 물질과 욕망 그리고 이상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소홀히 하거나 배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 신앙과 적대적이며, 위협이 될 수도 있다(임성빈, 2008). 소비주의는 결코 하나님 안에서의 진정한 만족을 대체할 수 없다. 첫째, 소비주의는 물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것은 신성함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와 어울리지 않는다. 예수님은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 보다 중하지 아니 하냐”(마6:25)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믿으라는 도전이다. 영원한 생명과 만족은 오직 주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과 만족이란 주제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만나는 장면에서도 나온다. 하나님을 지향하는 삶을 상징하는 물을 마실 때 비로소 우리는 궁극적인 만족을 얻고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될 것이다(Gonzalez, 2011). 둘째, 소비주의에 의해 현대인의 자율적인 인격이 중대한 위협을 받고 있다. 질적으로는 더 가치 있는 자율적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비행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소병철, 2010). 셋째, 소비 자체는 죄악이 아니다. 문제는 과도한 소비이다. 여분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을 돕는 데 써야한다. 과도한 소비는 환경을 파괴하고, 소비 자체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부를 소유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 재물을 가난한 자와 연대하여 나누어야 한다. 넷째,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지만, 소비자도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소비가 윤리적인지 물어야한다. 이윤추구만이 기업을 지배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존엄성이 우리의 생산과 소비 방식을 좌우해야 한다. 소비자도 윤리적이고 비판적인 소비를 해야 한다(손봉호, 2015). 다섯째, 기독교와 소비주의의 결합은 번영신학을 통해 나타난다. 번영신학은 소비주의와 기독교 세속주의가 결탁한 결과일 수도 있다(Gonzalez, 2011). 번영신학적 믿음은 우리나라의 가독교인들에게 팽배해 있는 소비주의 풍조를 조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Ⅳ. 결언 본고에서 소비주의에 대해 비판적 고찰을 통해 소비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함정을 직시하고, 그것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을 숭상하는 죄에 빠지지 않고, 믿음을 지켜 온전한 구원의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우리는 소비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소비주의에 사로 잡혀 소비 생활을 하게 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 힘들다. 소비주의는 물질을 중시하며, 물질적 만족과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 중심이며, 과도한 소비를 조장한다. 그러므로 자신도 모르게 소비주의에 물들게 되면, 쇼핑에 몰입하게 되고, 쇼핑을 통해 만족과 평안을 구하려는 소비지향적 삶을 살고자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다. 이 세상과 물질에는 평안도 구원도 없다. 예수님은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물질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되고,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질이 우상이 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쇼핑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질문해 보아야 한다. 기독교의 소비영성을 회복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내가 부한 데도 처하고, 빈한 데도 처했노라”(빌4:11, 12)고 한 바울 사도의 자족하는 믿음이 요구된다. 불교를 비롯한 타 종교에서도 내려놓음, 비움 등의 탈물질, 탈소비적 삶이 확산되고 있는데, 기독교에서도 그리스도가 주신 참된 영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이런 영성이 경제영성, 소비영성으로 나타날 때, 소비주의를 능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소비주의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기독적 소비관에 입각하여 물질을 선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깨어있지 않으면 물질 중심의 삶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믿음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 |
영문 초록 | |
키워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