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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성적 텍스트로서의『걸리버 여행기』와 그 기독교적 함의
영문 제목
저자 김철수
다운로드 pdf [문화] 김철수 (논문) 발표문 요약(걸리버 여행기).pdf (607 KB)
논문 구분 일반논문 | 인문과학
발행 기관 기독학문학회
발행 정보 (통권 32호)
발행 년월 2015년 11월
국문 초록 I. 들어가는 말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가이자 성직자였던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의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1726)는 외과 의사이자 선장인 주인공 르뮤엘 걸리버(Lemuel Gulliver)가 미지의 불가능한 나라로의 여행을 상술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는 네 개의 나라에 대한 주인공 걸리버의 여행의 기록을 담고 있는 이 작품에 대하여 로버트 엘리어트(Robert Elliot)나 끌로드 로슨(Claude Rawson) 같은 학자들은 18세기 영국과 유럽을 풍미하던 풍자문학의 전통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가 하면, 마이클 맥키언(Michael McKeon) 같은 이들은 이 작품이 다니엘 디포우(Daiel Defoe)의『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나 사무엘 리차드슨(Samuel Richardson)의『파멜라』(Pamela) 등과 더불어 본격적인 초기 소설로 여기고 있다.(이혜수, 2006: 438-49 재인용)
본 논문은 이처럼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작품이 발단, 전개, 위기, 결말이라는 전통적인 구조로 이루어진 한 편의 소설작품이라는 점에 착안하고, 그러한 전통적 구조 속에서 저자에 의해서 복잡하게 조종되고 있는 다양한 시점(points of view)을 러시아 출신의 미학이론가인 미하일 바흐찐(Mikhail Mikhailovich Bakhtin 1895-1975)의 ‘다성성(polyphony)’이론에 비추어 재독하여, 작품 속에 혼재되어 배치된 저자와 주인공, 그리고 다양한 등장인물의 목소리들의 양상을 분석한 후 그러한 작가의 전략이 기독교 세계관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작품 전반을 통해서 영국과 유럽의 국가들에 대한 표면적인 비판을 넘어서서 소위 ‘혐인론’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간 본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저자는 그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저자는 이 작품의 출판 초기부터 조너선 스위프트라는 자신의 이름 대신에 ‘외과의사이며 여러 배의 선장인 르뮤엘 걸리버’라는 가상의 저자를 작품의 표지에 기입하였고, 작품 속에서는 낯선 나라에서의 경험을 통하여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을 통하여 여러 나라와 그 국민들을 비웃으며 풍자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풍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러한 저자의 태도는 작품 속의 페르소나를 통해서 자신의 의도를 강조하고자 했던 소위 ‘단성적 작가(monological author)’의 자세를 탈피하고, 스스로 작품 속으로 뛰어들어 등장인물 중 한 사람으로 기능하는 ‘다성적 작가(polyphonic author)의 입장을 견지하며 다양한 인간의 약점을 비판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성을 자랑하는 모든 인간들의 시도와 노력은 마치『전도서』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주장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II. 바흐찐의 다성성 그리고 그 기독교적 함의
다성성(polyphony)의 개념은 미하일 바흐찐이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의 작품들을 연구하면서 쓴『도스토예프스키의 시학의 제 문제』(Problems of Doestoevsky's Poetics) (1929/1963)라는 책에 기술되어 있다. 음악의 형식 중 대위법에 의해 둘 이상의 독립된 멜로디가 화성적으로 결합된 형태를 가리키는 이 용어는 바흐친에 의해 그 음악적 의미를 떠나서 문학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다성적 소설의 저자는, 특정한 의도를 중심으로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아 자신의 의도를 발전시켜가는 소위 ‘단성적 소설(monologic novel)’의 작가와는 달리 그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바흐찐에 따르면 다성적 소설의 작가는 대화적 세계관을 추구해 가는 과정 속에서 텍스트 뒤에 감춰진 예술적 원리들을 구축하고 조정하는 역할하게 되는 것이다. 문학담론의 주체로서의 작가는 완전한 대화적 세계관의 기반을 형성하고, 작가 자신과 사상과 행동의 자유를 추구하는 작중 인물 사이의 긴장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로 융합되지 않은 소리들이 끊임없이 밀려들게 될 것이며, 많은 수의 다양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언어들이 구성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저자라는 권위적인 자리에서 내려와 자신이 창조한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목소리들 속으로 편입되는 다성적 저자의 모습은 추상적인 공의의 입장에서 내려와 자비를 베풀고 고통 받고 용서하기 위해서 자신을 육화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일맥상통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렉산다르 미하일로비치(Alexandar Mihailovic) 역시 칼리스토스 웨어(Kalistos Ware)의 말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삼위일체이고 셋은 동등한 위격들이며 각자는 상호 사랑의 끊임없는 운동에 의해 다른 두 위격들 안에 거주’하며 ‘영적인 노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인간이 삼위일체적인 상호 내재성 또는 페리코레시스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온전히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사랑의 원 안에 들어가는 것이 되어야한다’”(미하일로비치 227)고 주장하고 있다.
“상이한 관념들의 전시실”이자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들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구경거리이고, 박식함을 자랑하는 백과사전”이며, “단일한 목소리에 지배되지 않는 다중의 목소리와 그들 사이의 대화, 천박하고 음란한 카니발적 리얼리즘, 기존의 다양한 작품을 혼합하여 떠들썩한 웃음을 자아내는 메니포스풍의 풍자의 걸작”(미야시타 시로 145)이라고 평가되고 있는『걸리버 여행기』는 그 저작의 과정 뿐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다성적 소설로서의 성격을 충분히 지니고 있는 작품이며, 결국에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전도서 1: 2) 세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아닌 자신의 눈 속의 들보를 먼저 볼 것을 설파하는 일종의 자기 반성적 ‘메타 텍스트’로서 해석할 수 있다.

III. 다성적 소설로서의『걸리버 여행기』와 그 저자
한 편의 소설 작품으로서의『걸리버 여행기』는 네 개의 여행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여행기는 크게 네 개의 모티브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난파와 미지의 세계로의 도착의 모티프로 이루어진다. 제 1부에서는 후원자가 사망한 후 온갖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동료 의사들과 같은 부류로 살아가기를 거부한 의사 걸리버가 계속되는 경제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배를 타게 되고, 이후 난파를 당한 그는 릴리풋(Lilliput)이라는 소인국에서 포로가 된다. 타고난 방랑벽과 계속되는 항해에 대한 제안을 물리치지 못한 걸리버는 제 2부에서는 브롭딩낵(Brobdingnag)이라는 이름의 거인국 사람들에게 사로잡히게 되며, 제 3부에서는 해적들의 음모에 의해 라퓨타(Laputa)라는 나라에 버려지게 되는가 하면, 마지막 작품인 제 4부에서는 후이늠(Houyhnhnm)이라는 이름을 가진 말들의 나라에 가게 된다.
각 여행기의 두 번째 모티프는 경험과 적응의 단계로서, 주인공 걸리버는 점점 자신이 도착한 나라와 그 거주자들의 관습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걸리버는 유럽과 특히 영국의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제도에 대하여 각 나라의 통치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 나라들의 제도들과 비교하면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 중 특히 자신의 조국인 영국의 정치와 역사 및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세 번째 부분을 이루고 있는 곤경의 모티프에서는 곤란한 일들이 일어나서 걸리버는 그 나라들을 떠나게 되는데, 소인국에서는 반란의 혐의와 고문의 위협을 받고, 거인국에서는 거대한 독수리에게 낚아 채인 후 그 나라를 떠난다. 세 번째 여행에서는 라퓨타인들의 잔인성과 강박에 가까운 몰두, 라가도 아카데미의 학자들의 어리석은 실험, 글럽덥드립의 마술사들의 폭로 그리고 스트럴드브러그라는 불사의 인간들에 대한 환멸 때문에 그 나라들을 떠나게 되고, 마지막 여행인 말의 나라에서는 걸리버가 그 나라의 짐승 같은 존재인 야후들과 닮았다는 이유로 후이늠들에 의해서 추방된다. 그리고 귀향의 모티프가 주를 이루고 있는 마지막 단계에서 걸리버는 지나가는 배에 의해서 바다에서 구해져서 영국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그 후에도 지속적인 ‘자기추방’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처음 세 나라의 여행을 통해서 인간의 부정적인 단면을 경험하고 자기반성을 해 오던 걸리버는 마지막 나라인 후이늠국에서는 인간의 총체적인 부패에 환멸을 느끼고 광인이 되어버렸지만, 저자인 스위프트는 걸리버로 하여금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곳이 비록 부패하여 냄새나는 지옥 같은 곳일지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정직과 겸손 등의 선한 영향력의 전파를 통해 자신이 변화시키며 함께 살아가야 할 소임을 고백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작품을 바흐찐의 소설이론 중 하나인 ‘다성성’에 근거하여 분석해 본 결과, 저자인 스위프트가 자신의 일관된 주장을 강조하는 전지적 시점의 단성적 저자의 위상을 걸리버라는 가상의 저자 속에 감추고, 작품 속으로 뛰어 들어가 모든 작중 인물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며 풍자와 조롱의 주체와 객체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다성적 저자’의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권세와 명예와 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전도서의 저자의 말처럼 ‘헛되고 헛된 것’이며, 모든 인간은 교만과 허세와 모든 악을 버리고 겸손의 자세로 서로간의 사랑을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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