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술 담론 속에 나타난 창조주와 창조세계의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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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제목 | |
저자 |
오의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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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오의석 (논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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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오의석 (논평 안용준) 예술 담론에 나타난 창조주와 창조세계의 이미지.pdf (281 KB) |
논문 구분 | 일반논문 | 예술
발행 기관 | 기독학문학회 |
발행 정보 | (통권 32호) |
발행 년월 | 2015년 11월 |
국문 초록 | 본 논문은 예술의 담론으로 표현된 창조주와 창조세계에 대한 비유와 그 이미지에 관한 연구이다. 흔히 창조자와 창조세계에 대한 논의와 담론은 신학자와 과학자들의 몫으로 여겨지고 있다. 창조주와 창조세계에 대한 예술적 담론은 창조론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이성적 접근이나 합리적 탐구와 접근의 방법이 다르다. 예술적 담론은 감성적인 인식과 진술에 기반 한다. 자료를 제시하며 설득과 이해를 요구하기 보다는 감성적 공감과 동의가 우선하는 접근이다. 문학적이고 수사적인 비유로 나타나며, 그 결과 매우 친숙하고 쉽게 다가온다. 본 연구의 목적은 예술 담론들을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넓히고 최고의 예술가로서 고백되고 서술되는 창조주의 풍성한 면모와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는데 있다. 논문에서 다루는 에디스 쉐퍼, C. S. 루이스, 래비 재커라이어스, 폴 투루니에, 마크 핸비의 저서에 나타난 창조주와 창조세계에 대한 비유적 담론들을 통해서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깊이 있고 폭 넓게 이해한다. 그리고 성경에 나타난 토기장이와 흙, 질그릇의 비유를 살펴봄으로써 창조주와 피조물 된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적실한 통찰임을 밝힌다. C. S 루이스는 하나님은 위대한 조각가로 말하면서 인간을 그가 만든 조각 작품으로, 그리고 세상을 조각가의 작업실로 이야기 한다. 작업실이란 표현에서 우리는 창조의 진행성을 유추해 보았고, 조각가의 조각 작품은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로서 단순한 작품에 머물지 않고 조각가의 작업을 돕는 조수와 조력자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았다. 인간으로부터 눈을 돌려 자연과 대지를 바라볼 때 창조주 하나님은 거대한 스케일을 다루는 대지예술가로서 지구를 가꾸고 있는 모든 대지예술 작업의 원형을 보여주면서 지상의 대지예술가들의 작업에 빛과 바람과 물 등의 자연조건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돕는 역할을 감당한다. 반면에 하늘로 눈을 돌려 우주의 운행을 살펴보면 창조주는 지구와 태양계와 우주 전체를 거대한 키네틱 조형체로 구상하고 설계하였으며 지금도 붙들고 운행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과 자연을 조성할 뿐 만 아니라 인생을 빚어가고 이끌어 가는 분으로서 하나님은 위대한 장인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래리 잭커라이어스는 창조주를 위대한 장인, 곧 오늘날의 섬유예술가로 비유한다. 잭커라이어스는 우리 인생을 조성하고 형성하는 실타래로 7가지의 요건을 들고 있는데 본고에서는 그가 앞서서 비중 있게 제시하는 유전자와 고통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유전자는 그 자체의 구조가 경이로운 짜임새를 가지고 있음도 흥미롭거니와 유전자에 의해서 우리 인생을 각기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로 형성해 주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인간은 고통을 동해서 빚어지고 만들어져 감을 이야기 한다. 이 고통의 담론은 마크 핸비와 성경이 말하는 토기장이의와 질그릇의 비유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된다. 마크 핸비는 그릇의 재료인 흙덩이가 물레의 회전력과 장인 손의 압력을 고통으로 이해하면서 견디어 내야 하는 것임을 환기시킨다. 연구자는 테라코타 작품 창작과 전시를 통해서 가마의 열기에 의해 소성되는 과정을 고통과 시험, 정화와 심판의 의미로 해석한 연구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장인의 마지막 이미지로 폴 투루니에는 우리 인생을 모험 속에 몰아가는 지휘자의 이미지로 비유한다. 여기서 인간은 그 지휘와 모험에 모든 것을 맡기는 연주자가 된다. 예술 담론 속에서 살펴본 이상과 같은 비유와 이미지는 각기 창조주와 세상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적실하게 드러내 주는 반면에 그 전체적인 통합의 그림은 창조주의 풍성함과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예술 담론은 예술가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며 그들을 격려한다. 창조주를 다양한 예술가의 모습으로 담아낸 예술 담론 속에서 작가들이 창조주의 형상을 닮아 지음 받은 존재로서 그가 심어놓은 창조성을 발휘하고 동역하는 창조적 삶에 대해서 충분한 긍지와 보람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작가들은 누구보다도 이러한 예술적 담론의 현장에 관련되어 살고 있다. 그들은 작품과 작업 속에서 창조주를 소통하기 원하는 이들로서 창조 세계의 원리와 질서와 비밀을 깊이 체감한다. 그런 만큼 책임 있는 존재로 자신을 자각한다. 그러나 창조주의 조수로서 동역자로서의 정체성은 그들의 마음은 더욱 부풀게 하고 높아지게 할 수 있다. 교만의 위험이 크리스천 작가에게 여전히 있고 오히려 세상보다 더욱 클 수 있다. 크리스천 예술가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토기장이 하나님 앞에 여전히 진흙이며 연약한 질그릇임을 고백해야 하는 이유이다. 대부분의 예술 담론 속에서 창조주가 높고 크고 탁월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과 달리 성경이 말하는 토기장이의 이미지는 매우 소박한 인상을 준다. 오늘날 도예가나 세라믹 아티스트로 불려질 수 있는 모습을 성경에서는 도공에도 못 미치는 ‘토기장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세상을 돌림판과 소성 가마로, 우리 인간을 진흙과 빚어져가는 그릇의 이미지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부드럽고 친숙해 보이는 이 비유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질그릇 된 인간에 대해서 절대적인 주권을 선포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체질과 연약함을 확연히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토기장이 앞에서 질그릇 된 우리 인생들에게 순종과 겸손을 요구한다. 우리 각자는 창조주의 돌림판 안에서 빚어져 가는 그릇이고 작품인 것이다 일찍이 F. A. 쉐퍼는 크리스천의 삶 자체보다 더 중요한 예술 작품은 없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술작품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기장이의 비유는 창조주 하나님의 돌림판 위에서 빚어져 가는 작품으로서의 삶을 다시 한 번 성찰하며 돌아보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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