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 나타난 구원자이미지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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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제목 | |
저자 |
조주영 (건국대학교 박사수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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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B 02] 조주영(원본)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 나타난 구원자이미지연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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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구분 | 일반논문 | 세계관기초
발행 기관 | 춘계학술대회 |
발행 정보 | (통권 23호) |
발행 년월 | 2016년 05월 |
국문 초록 | 들어가며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서는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캐릭터를 통해 구원을 받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기독교에서 나타나는 구원자의 이미지는 구약성서에서는 메시아, 왕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신약성서에서는 예수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구원자 이미지는 <맨오브라만차>의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캐릭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구원받는 자와 구원자와의 관계는 구원의 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사건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틸리히의 중생-칭의-성화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맨오브라만차 속 중생-층의-성화의 과정은 첫째, 세르반테스와 감옥의 죄수들에게서 둘째, 돈키호테와 알돈자에게서 나타난다. 이들이 극의 서사과정속에서 겪는 일련의 사건들은 구원의 과정과 매우 닮아있다. 세르반테스/돈키호테는 그리스도 곧 구원자로, 죄수들/알돈자는 그를 만난 구원을 받은 자로 해석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성경적 소재가 포함되지 않은 대중문화콘텐츠라 할지라도 기독교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의 시각에서는 충분히 기독교적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변증신학자인 폴틸리히의 구원의 과정의 재해석은 보편적인 구원의 주제를 담은 작품의 서사구조와 닮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원자>이미지의 변화 구약성서 안에서 ‘구원자’라는 말의 의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또는 ‘기름을 발린 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에서 도출될 수 있는 구원자의 개념으로는 왕정시대의 ‘왕’이 있다. 헬레니즘 시대에서 구원은 인간을 심각한 위험으로부터 건져내는 신, 혹은 인간의 행위를 가리킨다. 신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시기가 바로 헬레니즘 시대에서부터이다. ‘구원자’는 항상 인간과 결부되어 있었는데, 구원의 대상은 늘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자’는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는 구원자로 대표되는 인물로 예수가 등장한다. 여기서 구원은 기존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됨을 의미한다. 제자들은 예수를 만나 예수의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 12명의 제자들은 이후 예수가 죽고 난 다음에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아나가게 된다. 폴 틸리히의 구원의 과정 폴 틸리히는 변증신학자이다. 변증신학은 영원한 메시지의 힘 속에서 그리고 상황에 의해서 마련된 수단을 통해서 상황이 안고 있는 물음에 대답하려는 신학이다. 틸리히는 신학의 근본적인 과제로서 변증적인 성격을 제시하고, 전통적 용어를 재해석하여 시대적 상황의 물음에 대답했다. 틸리히는 성령의 현존의 영향 아래에 있는 개인이 어떻게 삶의 모호성을 극복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면서 전통적 구원의 과정이 실존론적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령의 현존안에 거하는 공동체, 즉 교회공동체에 개인이 들어오는 과정이 회심의 과정이며, 이는 곧 구원의 과정이다. 구원의 과정은 중생, 칭의, 성화로 설명될 수 있다. (1) 중생 중생은 성령의 현존에 의한 새로운 존재의 창조를 의미한다. (2) 칭의 칭의는 성령의 현존에 의한 새로운 존재의 역설적인 수용을 의미한다. (3) 성화 성화는 성령의 현존에 의한 성숙을 향한 새로운 존재의 삶의 과정을 의미한다. <맨오브라만차>에 나타난 틸리히의 구원의 과정 1. 세르반테스를 통한 감옥의 죄수들의 구원의 과정 (1) 중생 세르반테스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감옥의 죄수들에게 부여한다. 감옥에서 죄수로 살던 이들이 세르반테스라는 외부인의 등장으로 새로운 환경이 조성된다. 이는 성령에 의한 새로운 존재의 창조를 의미하는 중생의 과정을 의미한다. (2) 칭의 죄수들은 처음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역할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그들에게 각각의 역할을 부여하고, 이 역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일일이 설명한다. 그리고 그 작품에 하나의 캐릭터로 녹아들게 만든다. (3) 성화 극의 마지막에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작품에 참여한 모든 죄수들이 처음과는 다른 모습으로 세르반테스를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르반테스의 꿈을 응원하고, 함께 그 꿈을 꾸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는 성화의 과정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2. 돈키호테를 통한 알돈자의 구원의 과정 (1) 중생 알돈자가 있는 여관으로 들어온 돈키호테는 알돈자를 ‘둘시네아’로 부른다. 처음으로 알돈자는 자신의 삶에 대해 질문을 갖게 된다. 소외된 인간은 오직 성령의 힘을 통해서만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중생의 핵심인데, 돈키호테가 알돈자를 둘시네아로 불렀기 때문에, 소외되었던 인간 알돈자는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었다. (2) 칭의 알돈자는 둘시네아로 불리는 과정속에 일종의 역설을 경험한다. 이는 자신의 존재가치와, 둘시네아로 불리우는 여성의 존재가치 속에서의 괴리감이다. 무의미한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둘시네아라는 이름은, 결국 그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계기를 만든다. (3) 성화 알돈자의 성화의 과정을 가장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다. 중생과 칭의의 과정을 겪은 그녀는 자신의 삶의 모호성을 완벽하게 극복한 형태로 마지막 장면에서 나타난다. 옷차림에서, 그리고 돈키호테를 향한 설득의 노래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더욱 명확하게 나타내는 것은, 알론조 퀴하나의 죽음의 장면이다. 이 죽음을 대하는 알돈자의 자세를 살펴보아야 한다. ‘돈키호테는 죽지 않았어요.’ 라고 말하는 알돈자 말에서, 그리고 알론소 퀴하나의 시신을 뒤로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알돈자의 행동에서, 진정한 성화의 과정에 있는 알돈자를 찾아볼 수 있다. 나가며 이처럼 성경적 소재가 포함되지 않은 대중문화콘텐츠라 할지라도 기독교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의 시각에서는 충분히 기독교적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변증신학자인 폴틸리히의 구원의 과정의 재해석은 보편적인 구원의 주제를 담은 작품의 서사구조와 닮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이 대중문화콘텐츠를 기독교시각으로 분석하는 하나의 예가 되어 이러한 후속 연구들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
영문 초록 | |
키워드 | 폴 틸리히, 구원의 과정, 맨오브라만차, 뮤지컬, 서사구조분석, 구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