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로타 크라이식의 화해 사상에 관한 고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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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제목 | A Research on the Reconciliation Thought of Lothar Kreyssig |
저자 |
최용준 (Yong Joon (John) Choi) (한동대학교 ICT 창업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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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구분 | 일반논문 | 세계관기초
발행 기관 | 신앙과 학문 (ISSN 1226-9425) |
발행 정보 | 제29권 3호 (통권 100호) |
발행 년월 | 2024년 09월 |
국문 초록 | 본 논문은 로타 크라이식(Lothar Kreyssig, 1898-1986)의 화해 사상에 관한 연구이다. 그는 바이마르와 나치 시대의 독일 판사였다. 그는 독일 나치 시대에 소위 작전 T4(Aktion T4)라고 불리는 장애인 안락사 정책에 반대한 유일한 판사였다. 이 안락사 정책은 1939년 9월 1일에 시작되어 1941년에 중단되었는데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약 20만 명이 이 작전으로 사망했으며 기타 유럽 국가에서는 10만 명의 장애인이 사망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그는 다시 판사직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나중에 그는 화해의 사도가 되어 독일 개발 원조 비정부 기구인 화해를 위한 평화봉사단(ASF: Aktion Sühnezeichen Friedensdienste)를 설립했다. 그의 화해 사상은 매우 중요하고 한반도 정세에 깊은 함의가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그의 생애를 간략히 살펴본 후 화해에 대한 사상과 그 구체적인 열매인 화해를 위한 평화봉사단을 고찰하고 그의 사상이 한반도 상황에 대해 주는 교훈을 평가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
영문 초록 | This article investigates the reconciliation thought of Lothar Kreyssig (1898–1986). He was a German Christian judge in Weimar and Nazi times. He was the only judge who objected to the policy of euthanasia for the disabled, the so-called Operation T4 (Aktion T4) during Nazi times in Germany. This policy started on September 1, 1939 and stopped in 1941. About 200,000 people were killed in this operation in Germany and Austria and 100,000 people in other European countries. After World War II, he was again offered a judgeship, but declined. Later, he became an advocate of German reconciliation movement by establishing the Action for Peace Reconciliation Service and the Action for World Solidarity, a German development aid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His idea of reconciliation is very important and has profound implications for the situation in the Korean peninsula. Therefore, this article first briefly examines his life, his thought on reconciliation and concrete action. Then it evaluates what influence he left behind and concludes what kind of lessons he gives to the Korean situation. |
키워드 | 로타 크라이식, 작전 T4, 화해, 평화, 봉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