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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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제목 | |
저자 |
서성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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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3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연구_서성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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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구분 | 일반논문 | 예술
발행 기관 | 기독학문학회 |
발행 정보 | |
발행 년월 | |
국문 초록 |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는 세상유혹에 빠져 고향을 등지고 나간 탕자가 아버지의 용서로 새삶을 찾는 감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렘브란트의 작품 가운데서도 <돌아온 탕자>를 조명하게된 것은 그의 예술정신이 가장 잘 농축된 대표작이자 그의 신앙적 내면을 짚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으로 렘브란트는 그가 추구해오던 성경회화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탕자의 비유’는 프로테스탄트가 융성했던 네덜란드에서 미술가들에게 자주 다루어져 왔는데 안토니즈(Cornelius Anthonisz)와 헴스커크(Maerten van Heemskerck)가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안토니즈가 착한 행실로 인간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로마 가톨릭을 비판하면서 성경내용으로 돌아가 참된 용서를 구하는 작품을 그렸다면, 헴스커크는 젊은 렘브란트가 ‘탕자’를 묘사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고개를 떨구고 죄송스러워하는 탕자를 묵묵히 감싸는 아버지의 포즈가 헴스커크의 작품과 유사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허물많은 탕자를용납하시는 아버지의 자비에 주목하였다. 이같은 경로를 거쳐 렘브란트는 <터번을 쓴 탕 자>(1635,유화),<돌아온 탕자>(1636년,에칭), <돼지치기가 된 탕자>(소묘,1647-48), <바람둥이 여성과 어울리는 탕자>(1642,소묘), 그밖의 여러 점의 소묘작품, 그리고 최후작인 <돌아온 탕자>(1661-1669,유화)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에르미타쥬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에서 렘브란트는 아버지의 ‘부성적 사랑’을 한층 강조했는데이는 그가 젊었을 때 탕자의 부패와 상한 모습에 중점을 두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청년기에 방탕한 탕자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노년에는 용서와 자비에 초점을 맞추었다. 만년의 작품에서 렘브란트는 아버지를 그릴 때 감상자를 감싸는 듯한 구도로 마치 사람들을 용서의 자리에 초대하고 있는 것같은 착각을 낳게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과오로 부서져버린 영혼이 유일하게 의존할 곳은 ‘하나님의 은총’밖에 없음을 이 불후의 명작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을 그리스도의 ‘쉽고 가벼운 멍에’(SuaveJugum) 도상과 연결 지어 고찰해보려고 했다. 즉 렘브란트는 무릎을 꿇는 죄인의 어깨에 손을 얹어(shoulder handling) 마치 그리스도의 사랑의 멍에를 지워주는(yoking) 것처럼 죄를 없애고 자유로운 삶을 허용해주는 모습을 표현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단순히 성경을 줄거리로 한 ‘종교적 그림’이라기보다 타락과 불순종, 용서, 관용, 사랑 등 기독정신이 복합적으로 스며든 ‘은총의 회화’란 느낌을 갖게 한다. <돌아온 탕자>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두 명의 아내와 대부분의 자녀가 숨을 거두는 통절한 슬픔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가 얼마나 빛나는 부활과 영광의 신앙을 지녔는지 알아볼 것이다. |
영문 초록 | |
키워드 | 렘브란트, 탕자의 비유, 돌아온 탕자, 멍에의 비유, 성경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