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이 글을 원이삼(Wesley Wentworth, 1935~) 선생님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1981년에 원 선생님을 만나 1982년부터 스터디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대학원생들과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것이 어언 36년 전의 일이다. 어제(2019년 4월 14일)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원 선생님을 문병했다. 병실에 들어서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시고서 뭔가 열심히 하셨다. 마침 저에게 이메일을 하나 보내고 계신 중이었다. 일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에 관한 책 소개였다. 원 선생님은 1965년에 자비량 선교사로 한국에 오신 후 꼭 그와 같은 일을 오늘까지 54년 동안 해오셨다. 병상에 누워서 호스로 복수를 빼내면서까지 그 일을 하고 계시니 참 놀라운 일이다. 아마 원 선생님을 만난 많은 분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수십 년간 해오셨을 것이다.
원 선생님과 함께 처음 시작한 스터디그룹을 지금 기억나는 대로 열거하면, 당시 홍릉의 카이스트(KAIST)에서 과학과 기독교에 대한 공부를 거의 매주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영문학과 기독교, 교육학과 기독교, 예술과 기독교, 경제학과 기독교, 역사와 기독교 등의 스터디그룹을 조직하여 책을 읽고 토론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리차드 미들톤의 <그리스도인의 비전>(Transforming Vision, IVP), 엘 깔스베이끄의 <기독교인의 세계관>(Christian Worldview, 평화출판사), 해리 블레마이어의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Christian Mind, 두란노) 등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당시에 이런 책들 이외에도 제임스 사이어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Universe Next Door, IVP), 마이클 고힌의 <창조 타락 구속>(Creation Regained, IVP) 등의 기독교 세계관의 고전이라 할 만한 책들이 다른 분들에 의해 번역 출판되었다. 특히 아이브이피(IVP) 출판사는 관련 서적 출판에 앞장서서 많은 기여를 했다. 이 일들이 1980년대 초중반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대학교 교정, 교수 연구실, 개인의 가정에서 모이던 스터디그룹이 조금씩 커지면서 조그만 자체 공간을 확보하였다.
초창기에 함께 했던 분들의 이름을 열거하지 않기 위해 상당한 인내를 발휘해야 할 만큼 함께 했던 추억들이 많다. 당시 참여자들은 열정적이었다. 뭔가 새로운 역사를 열어간다는 흥분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디어들이었고 시도들이 있었던 것이다. 믿지 않는 학생들은 당시 독재 정권에 맞서 돌을 들고 최루탄 연기 속으로 뛰어 돌아다니던 때에, 그런 폭력적인 방식에 기독교인이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를 품기는 했지만, 적당한 기독교적인 대안을 찾지 못해 어색하게 머뭇거리던 당시 그리스도인 대학원생들과 대학생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은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이었고 단비와 같았다.
전공을 달리했던 많은 학생들이 그 일에 참여했으므로 모두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나름대로 기여했듯이, 신학대학을 졸업한 나는 나름의 지식과 경험으로 그 일에 기여하려 했다. 다른 전공의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과 기독교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과제였으나 나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신학과 기독교 세계관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뒤에 도예베르트(Dooyeweerd)의 <서양사상의 황혼에서>(In the Twilight of Western Thought, 크리스챤다이제스트)를 통해서 알게 되지만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을 신앙과 연결시키는 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확립하는 데에 힘을 썼다. 그래서 만든 커리큘럼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제목의 세미나였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에서 출발하여 구약과 신약의 가르침을 일별하고, 그것을 근거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이 하나님 나라의 증거여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하나님 나라가 지금 이 땅에 임하여 힘 있게 전진하고 있고, 신자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사는 것이므로 신자의 삶 전체가 성경적인 원리에 의해서 통제되어야 했다. 이렇게 보면 기독교 세계관은 그리스도인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신앙 그 자체가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 세계관의 필요성을 확보하고, 그것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동기를 부여하려 했다. 당시 거의 모든 스터디그룹이 원이삼 선생님에 의해 조직되고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과 똑같이 그때에도 책과 논문 프린트를 들고 학생들의 전공을 묻고 책을 들이밀었다. 그 고리에 걸리면 벗어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초창기 약 십여 년 그 일을 하다가 나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는데 귀국할 때에는 목사가 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한국에서 원이삼 선생님은 똑같이 그 일을 하셨고, ‘기독교학문연구회’(이하 ‘기학연’)도 점점 발전했다. 죄인들이 많이 모이면 항상 있게 마련인 분열과 갈등을 ‘기학연’도 피하지 못했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선으로 악을 이기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서도 선한 결과를 내실 것을 믿는다.
목회는 그 나름대로 온 힘을 쏟아야 되는 일이어서 현재 ‘기학연’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학연’ 활동을 하면서 형성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생각들은 나의 설교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그 판단은 나의 몫이 아니라 내가 섬기는 회중의 몫이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꽤 치열하게 세계관에 대해서 공부했었는데 지금 다시 한다면 즐기면서 할 것 같다.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의 생각을 읽고 이해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이 운동이 그렇게 즐기는 운동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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