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기초는 19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 신학자 오르(James Orr, 1844~1913)와 네덜란드의 신칼빈주의 학자이면서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 등에 의해 놓여졌다. 19세기 유럽은 계몽주의 사상이 다 방면에서 기독교 신앙과 충돌하고 있었다. 이들은 계몽주의 시대 기독교는 종래와는 달리 총체적인 변증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물에 대한 총체적인 기독교적 관점을 드러내고 변호하는 것”을 중요 과제로 삼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출발했다.
특별히 카이퍼는 근대주의 세계관을 과학적 세계관, 이성절대주의, 인문정신, 세속주의, 진보주의 역사관, 자유주의 신학으로 규정하고, 이것들에 대항하며 살아가는 삶이란 교회에서만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기독교 세계관의 실천적 부분을 강조했다.
이러한 견해는 네덜란드의 도예베르트(H. Dooyerweerd, 1894~1977)와 북미의 클락(G. H. Clark, 1902~1985), 헨리(C. F. H. Henry, 1913~2003), 쉐퍼(Francis A Schaeffer, 1912~1984)를 거치면서 일반인들의 실제적 삶의 영역으로 좀 더 확장되었다. 쉐퍼는 특히 학자와 운동가의 중간에서 대중적 기독교 세계관적 영성의 개념을 확립했는데, 사이어(J. W. Sire), 미들톤(R. Middleton), 왈쉬(B. Walsh), 월터스(A. Wolters) 등으로 하여금 대중적 세계관 서적을 출간하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한 학자들의 저술들을 한국 교회에 소개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원이삼(Wesley Wentworth, 1938~ ) 미국 선교사였다. 그는 1965년 한국 땅을 밟은 이래 줄곧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도와온 인물이다. 한국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필요성은 한국 교회의 근본적인 병폐가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잘못된 이원론이라는 자각에서 시작되었다. 즉, 삶의 어떤 한 부분에서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러한 이원론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이 필요했고, 이러한 기독 청년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며 시작된 것이 한국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었다.
한국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단체는 1981년에 시작된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와 1984년에 시작된 ‘기독교학문연구회’(이하 ‘기학연’)를 들 수 있다. 원래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후에 기독학술교육동역회로 개명)는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대학 설립을 목표로 시작되었고, ‘기학연’은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학문연구를 목표로 시작되었다. 공교롭게 두 단체의 초기 활동은 모두 한국 교회와 사회에서 기독교 세계관의 연구와 확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들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천천히 한국 교회와 사회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의 초기 핵심 구성원이었던 대학원 학생들과 학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은 전 우주적인데 어떻게 자신의 삶과 학문 활동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해답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있다고 보았다. 1980년대 초반 암울했던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목마른 젊은 기독 지성인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다.
이제 한국에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시작된 지도 근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1980년대 초 이래, 이 운동의 중심진지로 ‘기독학술교육동역회’(DEW)와 ‘기독교학문연구회’(KCSI)가 있었는데, 이 두 단체는 2009년 사단법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이하 ‘동역회’)로 통합되었다. 또한 그리고 전문교육기관으로는 동역회가 파송한 양승훈 교수를 통해서 1998년부터 시작한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등이 있다. 물론 이들 외에도 여러 단체들과 기관들이 있다. 이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한국 교회의 주요한 운동의 하나로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그 지평이 확장되면서 2000년대부터 비판적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즉, “세계관 운동이 여전히 식자들만의 운동이 아닌가?”, “운동을 태동시켰던 개혁주의 세계관 외의 세계관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지 않는가?” 등의 비판과 문제 제기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비판과 도전은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지나친 보수화이다.
한국 교계에서 처음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시작한 1세대 주역들은 1980년대 초, 20대 중반에 있던 대학원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당시로는 진보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60대에 접어들었고, 이들 상당수가 국내외 중요한 대학의 교수 등으로 옮겨감에 따라 점차 세계관 운동은 가진 자와 식자의 운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세계관 운동은 흔히 말하는 성공한 엘리트들의 운동이 된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 운동의 보수화는 반드시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미주에서도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세계관 운동의 보수화 징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어쩌면 이제는 기독교 세계관이란 이름으로 이 운동을 확산시키기에는 세계관 운동에 앞장섰던 1세대 지도자들의 보수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지도자들을 세워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계관 운동을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 이 글은 <통합연구> 20권 1호(2018.5.15.)에 실린 양승훈의 논문 “기독교세계관 운동의 회고와 전망”에서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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