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황영철이라고 합니다. 신국원 씨로부터 소개를 받아 전화하는데요, 그리스도인 대학원생들 모임에 참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이 전화가 대학원생 시절부터 지난 35년간 이어온 내가 기독교세계관 운동과 맺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처음 참석한 연구모임은 나의 전공과는 관계가 없었던 과학 모임이었다. 이미 김헌수 씨가 역사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고, 얼마 후에는 철학 연구모임이 만들어졌으며, 그 외에도 문학, 교육학, 정치, 심리학, 사회 정의 등의 모임들이 경쟁적으로 생겨나곤 했다. 이 다양한 모임들 사이에 모종의 연대감이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전체 모임과 집담회를 갖기로 했고, 그렇게 해서 1984년 1회 집담회에서 ‘기독교학문연구회’가 탄생했다.
대학원생들이 주축이 되었던 기독교학문연구회에 본격적으로 전문 학자들과 교수들이 가담한 것은 1990년대 초였다. 한국 기독교 학문의 선구자인 손봉호 교수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을 비롯해 유학 전후에 기독교학문연구회에 참여하거나 원이삼(Wesley Wentworth) 미국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 학문 연구를 소명으로 삼게 된 분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체제를 정비하고 본격적인 기독교 학문학회 활동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에, 비전을 같이 하면서도 구체적인 목표가 다소 달라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와 ‘기독교학문연구회’가 어떻게 통합하여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를 이루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지는 본 동역회 홈페이지의 연혁에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현재 사단법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이하 ‘동역회’)는 “기독교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을 살며 변혁의 씨앗을 뿌린다.”를 모토로 삼아,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학문연구 결과를 토론하고 공유하기 위해 매년 두 차례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신앙과 학문????이라는 논문집을 연 4회 발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안에 기독교 학문 연구의 터전이 확실하게 마련되었다고 생각된다. ‘동역회’는 또 기독교세계관으로 훈련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계관 아카데미’와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기독교세계관교육센터’(CTC) 등을 운영한다.
한편 기독교세계관을 따라 삶을 살고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 그동안 성경적 삶을 제반 사회 영역에서 성경적 관점으로 조망하는 기관지 <월드뷰>를 매월 발간했다. 하지만 이 잡지 편집 방향에 대해서 구성원들 사이에 좁히기 어려운 의견 차이가 생겼다는 사실은 독자들도 다 짐작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행히 이 문제에 대한 정리와 매듭이 잘 이루어졌고 새로운 기관지 <신앙과 삶>이 자리매김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모임에 가담하게 된 개인적 동기는 그리스도인 대학원생들의 모임이라는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는 점을 앞에서 언급했다. 따라서 처음에 우리는 기독교적인 학문연구라든지, 기독교적인 삶이나 문화에 대한 준비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 후에 주로 원이삼 선교사가 소개해 주는 서적들을 통해 우리는 세계관이라는 도구를 접하게 되었고,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이면에 네덜란드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의 전통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 카이퍼나 도예베르트 등이 어떻게 당시의 문화 전체 및 철학을 비롯한 제 학문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비판하며 세워나가려 했는지도 배웠다. 그 이후로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의 학문연구와 문화변혁의 열쇠처럼 되었다.
그런데 진정으로 기독교적인 학문을 하는 데에 소위 ‘기독교 세계관’으로 충분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학자가 학문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면 폭넓은 연구와 깊은 통찰이 필요한 것과 똑같이, 기독교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기독교적인 새로운 통찰이 있어야 한다. 그런 통찰이 어떤 기계적인 과정을 통해서 얻어질 수 없다는 점은 독자들도 잘 아실 것이다. 관련된 현상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할 것이고, 무엇보다 그 주제와 관련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충분히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성경이 주로 ‘구원’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여타의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면서도 성경은 우리 삶의 전체와 문화 전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우리는 믿고 고백한다. 따라서 성경이 나의 연구 주제에 대해서 시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뽑아내고 정돈하는 것은 나에게 맡겨진 임무이다.물론 뛰어난 기독교적 연구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연구 분야에서 그 내용을 학문적으로도 탁월하게 녹여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독교 학문연구나 문화의 개혁은 성화된 삶의 한 부분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참된 신자의 삶이 없이는 기독교 학문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동역회’나 ‘학문연구회’로 모여서 신자의 성화된 삶을 주제로 삼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제든지 이것이 우리의 전제이고 출발점이며, 우리가 하는 일도 이것의 한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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