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사전은 징그럽다는 말을 “만지거나 보기에 소름이 끼칠 만큼 끔찍하게 흉하다”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송충이가 그렇고, 꿈틀대는 지렁이가 그렇다. 기생충은 어떨까? 기생충도 사람에 따라 징그럽다고 말한다. 그런 징그런 물건이 실은 살아있는 생물(生物)이고, 더구나 사람 몸 속에 들어있다면 믿어지겠는가? 끔직하지만 팩트이다. 그런 기생충이 우리 몸 안에 살아 꿈틀대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2019년 칸 영화제에서 영화계 최고 명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한국 영화 제목이 바로 <기생충>인데, 그 작품의 감독은 봉준호이다.
<기생충>은 넌센스로 가득차 있다. 정상적이지 않은 장면들이 배치되어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한 실직 가장(송강호 扮)의 집안, 엄마와 아들, 딸. 그들은 반지하방에 살며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아 수신양호 지역을 찾기에 열심이다. 흥미로운 것은 어려운 살림지만 서로 미워하기는커녕 나름 웃음과 가족애가 흘러넘친다. 가난에서 오는 열등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연구대상인 가정이다.
여기에 대비되는 또 하나의 가정. 벤처로 큰 돈을 벌어 언덕배기 그림같은 집에 사는 사장(이선균 扮)의 집. 이 가정 역시 엄마와 아들, 딸로 단란해 보인다. 외형적으로 보면 모든 게 갖추어져 있을 법한데 어딘가 격이 맞지 않는다. 부자유스런 옷입은 듯한 연기로 각자의 역할극을 하는 듯한 가정, 역시 연구대상인 집안이다.
이 부잣집에 반지하방 식구들이 하나 둘 새로운 역할을 찾아 들어간다. 가정교사, 운전수, 가정부로 부유한 집안 자녀와 살림을 맡아주는 일은 지극히 정상적인 취업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천재적인 사기 수법을 총동원하여 부잣집으로 잠입해 들어가 월급 명목으로 가산을 빼돌린다. 기생충이 숙주에 빨판을 밀착시키고 영향분을 빨아먹듯이.
봉감독은 말한다. 수상 자체도 기쁘지만, ‘봉준호 장르’를 언급해 준 것이 감격스럽다 했다. ‘봉장르’는 무엇일까. 아마도 봉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알 듯하다. 대표적으로 <설국열차>, <괴물>이 <기생충>을 이해하는 키워드이리라. 이 영화들에는 봉감독의 예리한 시선이 파고든다. 피사체를 현미경으로 낱낱이 들여다 보듯, ‘봉장르’는 인간 현실을 놓치지 않는다. <설국열차>는 동화 속 같은 세계를 기차로 달려가는 상황 속에 우등 계층, 열등 계층으로 나누어 갈등을 벌인다.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진다. <괴물> 또한 환경 오염이라는 경악스런 설정 앞에 목숨 건 사투가 벌어진다. ‘봉준호 장르’는 과연 무엇일까. 비극적 인간 현실 앞에 어떻게 갈등과 파국을 극복할 수 있는가! 그것 아닐까. “인간은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는 휴먼드라마를 영화로 재연하고자 하는 예술혼. 그게 봉 감독의 세계관이리라.
먹고 사는 문제는 단순해 보이지만 가장 본질적인 삶의 한 영역이다. 빈한한 가정이 부잣집에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산다는 설정. 현대 사회는 이를 빈부의 양극화로 개념짓는다. 소득 문제로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는 현 시점에 양극화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중산층이 점점 얇아지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간극이 벌어진다고 경고한다.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는 지표로, 한 나라의 부(富)의 편중이 심화되는 경향은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부의 편중이 가속화 된다면, 미래 어느 시대에 가서는 시민 대부분이 기생충처럼 거대자본에 종속되어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가 될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단지 어느 정당의 구호에 그쳐서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기생충>을 통해 기생충은 결코 징그런 물체가 아니라고 느낀다. 기생충은 가속화되는 황금우상주의 사회 속에서 언젠가 변질될 수 있는 우리 자신이다. 카프카의 <변신>이 대비된다, 인간은 결코 돈에 의해, 가난에 의해, 혹 그 반대로 풍요에 의해 인간이기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반지하방에 살아도 인간다운 향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대궐같은 집에 살아도 인간다운 향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의 고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인간이 환경에 의해 어떤 징그런 물체로 변할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고한다. 그런 의미에서 더 이상 징그럽지 않은 메타포이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하나님 나라에서는 기생충도, 숙주도 없다. 반지하방이든, 저택이든,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기를 힘쓰는 것, 그것이 우리의 행복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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