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네덜란드가 낳은 불세출의 거장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와 한국의 서민화가 박수근(1914-1965)이 만난다면 어떨까? 이것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반 고흐는 30세때 <뿌리>를 그렸고 박수근은 39세에 <고목>을 그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으나 이웃과 자연을 사랑한 기독교 화가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박수근은 몇 그림에서 반 고흐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제작했는데 <고목>에서도 처연한 나무의 모습에서 유사성이 엿보인다. 반 고흐의 <뿌리>나 박수근의 <고목>은 몸부림치는 나무의 모습이 마치 인간의 삶을 의인화시킨 것같아 눈을 쉽게 뗄 수 없다.
사실 두 작품은 두 작가의 굴곡진 삶을 암시하고 있다. 반 고흐가 이 작품을 그린 시기는 보리나쥬(Borinage)에서 광부들을 섬기다 해임당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무렵이었다. 그는 런던과 파리의 구필(Goupil) 화랑에서 그림을 관리하고 판매한 경험을 바탕으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외사촌 이자 화가 안톤 모베(Anton Mauve)가 있는 헤이그에 와서 그림 수업을 받던 시절이었다. 이 시절 반 고흐는 소묘와 수채화를 즐겨 그렸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 온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대지에 달라붙어 있지만 폭풍으로 반쯤 뽑혀 나온 이 시커멓고 울퉁불퉁하고 옹이 투성이의 뿌리들 속에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을 담아내고 싶었다. --- 적어도 내 눈에는 이 그림 속에 어떤 감정이 들어있는 것같구나”(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고흐가 이 소묘에서 은유적으로 ‘삶의 고뇌’를 토로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한편 6.25 전쟁중에 제작된 박수근의 <고목>은 군산에서 피난중 부두의 노동자로 일하다가 상경, 뒤늦게 가족과 해후하여 함께 살던 시기에 제작한 것이다. 박수근은 장남 성소를 뇌염으로, 3남 성인을 전쟁의 혼란 통에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그는 전쟁의 아픔을 누구보다 쓰라리게 경험하고 있었다.
나무의 이미지는 박수근의 그림에서 단골 소재로 그의 처녀작 <봄이 오다>(1932)부터 1950년대와 60년대의 <나무와 여인> 연작까지 그의 작품세계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에게 나무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느릅나무가 유난히 많은 그의 고향 양구의 자연적 환경의 영향을 받은 탓도 있겠지만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나무는 산전수전 다 겪은 곡절 많은 나목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가 살던 시대의 풍상을 그대로 함축하고 있다.
반 고흐, <뿌리>, 1882
우리가 이 그림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삶의 애환, 즉 그들이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흔들리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고통과 아픔을 잊거나 감추고 싶어한다. 고통을 피하려고 잠깐뿐인 쾌락과 환각에 유혹을 받을 수도 있으나 그런다고 해서 고통이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그대로 둔 채 시간만 지연시켜버릴 뿐이다.
반 고흐와 박수근은 과감하게 고통의 문제를 직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기독교 신앙의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림을 통해 보건대 두 사람은 고통이 우리 삶에 합법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같다. 신음하는 나무를 아무런 배경도 없이 전면에 배치시킨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의 문제는 너무나 심각해서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블레즈 파스칼(Blaise Pacal)은 “인간의 위대함은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고 했는데 무언가 상황의 절망적인 사실에도 유익이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고난은 내 삶을 다스리고 구원할 힘과 권한이 내게 있다는 망상을 몰아내어 우리 영혼의 창조주만이 우리를 들어 올려 구세주의 상처가 우리의 구속임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고난은 우리를 구속자에게로 부르시는 궁극적인 목적안에서 매우 뛰어난 역할을 수행한다.
반 고흐와 박수근의 소묘 작품은 고통과 아픔이 신의 부재를 나타내는 표시로 간주하는 대신 우리가 깨어졌다는 사실에서 시작하여 구세주에게로 다가서게 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회의주의자였다면 그들은 진작에 신앙을 저버렸을 것이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들은 “빚과 의무를 진 세상에 보답하기 위해”(반 고흐) 그림을 계속했으며, “선하고 진실된 사람들을 조명”(박수근)하는 일을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여기고 이를 충실히 감당해냈다.
두 사람의 경우 생전에 유난히 시련의 나날을 보냈다. 그 연단이 깊고도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에는 필시 거룩한 목적과 위대한 가치가 있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최근 예술계를 돌아보면 이런 사실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명성과 돈과 같은 세속적인 목적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세속적인 목적이 전부라면 그런 사람에 의해 탄생한 예술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두 화가는 작품을 통해 삶의 진실성을 나누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그들은 타인도 우리와 같이 연약하며 상처받기 쉬운 존재임을 확인시켜주었다. 고통은 어떤 개념적인 정의가 필요하기보다는 깊은 이해와 보살핌이 우선되는 지점이며, 미술가는 자신의 예술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고통이란 것이 오히려 타인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고, 위로와 공감의 촉진제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제고시킨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마 12:20)는 말씀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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