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Hugh Whelchel / 홍병룡 역 / 아바서원 / 2019
온전한 복음을 담은 세계관 이야기란 무엇일까? 성경 전체에서 초점이 되는 복음 이야기는 두 개인가? 아니면 네 개인가? 저자 휄첼(Hugh Whelchel)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서 초점을 ‘타락’ 이야기와 ‘구속’ 이야기, 두 가지로만 이원화하는 습관이 있다고 우려한다. 왜냐하면 온전한 성경의 복음 이야기는 이 두 개 이야기에 위에 ‘창조’ 이야기와 ‘회복’ 이야기 두 개가 반드시 더해져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온전한 성경적 세계관이란 이 네 개의 복음 이야기들이 함께 균형 있게 강조될 때, 잘 맞추어진 ‘다 초점 렌즈’의 안경과 같다. 또 우리의 삶을 제대로 잘 보고 잘 살 수 있게 해 주는 틀이 될 수 있다.(9). 왜 그럴까?
첫째, 창조 이야기는 우리가 어디서 온 존재임을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창 1:27). 로봇이나 목적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웅대한 이야기에 속한 파트너”로 창조하셨고, 그 소명은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돌보고, 경작하라는 문화 명령이다.(16). 이 소명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결코 취소되거나 면제된 적이 없다. 또한 우리는 <반지의 제왕>에서 돌킨이 ‘하위 창조자’라고 부른 존재들과 같아서, 하나님이 무(無)로부터 이미 창조하신 것을 가지고 무언가를 창조하도록 부름을 받았다.(20).
둘째, 타락 이야기는 인류의 첫 조상이 하나님께 반역함으로써 야기된 우리 인간의 죄 안에 있는 현재 상태에 대한 것이다(23). 타락 상태는 우리를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싶게 하고, 대신 우상을 바라보게 한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신뢰하고 소중히 여기게 한다. 때문에 깨어진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절망과 상처, 고통과 슬픔, 분노와 질투를 경험한다. 우리는 이러한 타락 상태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을 결코 기쁘게 할 수 없고, 사망하도록 되어 있는 자신의 결과도 뒤바꿀 수 없다. 타락 이야기는 온 세상이 왜 이렇게 죄의 영향을 받아서 신음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셋째, 구속 이야기는 끝까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으로 다시 우리를 구출해 주시는 내용이다(롬 5:8). 즉 하나님은 자신과 우리의 관계 회복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본래의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만일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믿기만 한다면, 즉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유업을 받는다(엡 1:5-6).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구속된 삶을 보여주라고 말씀하신다(31). 나아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진 모습을 보여주시려고 영광과 소망을 미리 맛보게도 하신다.
넷째, 회복 이야기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만물을 새롭게 하는”(계 21:5) 일이 완성되는 때의 소망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붙잡고 살아야 할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 속에서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한”(계 21:4) 새 하늘과 새 땅의 세상을 예비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세계를 내버리지 않으시고 다만 새롭게(카이노스) 하실 것을 소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때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아나고,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소망 안에서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고전 15:58) 하나님의 나라를 증진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저자는 우리가 성경에서 초점이 되는 네 장의 복음이야기 모두가 균형 있게 강조되고 붙잡혀지기를 원한다. 그래야 우리는 성경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제대로 발견하고 온전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48).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창조, 타락, 구속, 회복 이야기 중 특히 ‘창조’ 이야기와 ‘회복’ 이야기를 간과한다. 복음을 반쪽짜리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것은 다음의 치명적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44-47). 1) 우리의 참된 운명을 말해 주지 않는다. 2) 우리가 왜 창조되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3) 우리가 무슨 일을 하도록 창조되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4) 구원의 개인주의적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5) 죄를 관리하는 복음으로만 제한시킨다. 6) 성/속의 이분법을 만든다. 7) 구속을 도피하는 것으로 보게 한다.
나는 현장 사역자로서 이러한 저자의 입장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저자처럼 만일 창조 이야기와 회복 이야기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함께 없다면, 누구든지 타락 이야기와 구속 이야기만으로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설계 전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도 살아 낼 수 없다고 본다. 나 역시 오늘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직면된 이원론 극복이라는 과제는 창조 이야기를 통한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에 대한 분명한 확신, 그리고 회복 이야기를 통한 우리 모두가 구원받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소망 중에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가는 여정 속에서 답이 찾아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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