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영국 과학자 니덤(Joseph Needham)은 <중국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이란 방대한 책(7권)을 썼다. 거기서 그는 중국은 종이, 화약, 인쇄술, 나침판 등 인류 문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기술을 서양보다 먼저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16세기부터 서양에 뒤떨어지기 시작한 이유는 중국에 상인들이나 기술자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사회 구조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사회의 신분위계가 사농공상(士農工商) 순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술을 개발하는 공인(工人)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기술을 천시한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술’(techne)은 자연을 불완전하게 모방한 것으로 ‘도시’(polis)가 아닌 시골에서 천민이나 노예가 육체노동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취급하였다. 따라서 이성을 사용하여 자연을 연구하는 지식인에 비해서 열등한 것으로 대우받았다. 칸트도 이성의 본질적인 목적에 따라 형성되는 ‘본래적인 통일성’(architektonisdhe Einheit)에 비해서 ‘기술적인 통일성’(technische Einheit)은 자의적인 목적으로 이뤄진 가공품으로 격하하였다. 기술이란 자연, 이성, 본질에서 벗어나 자의적이고 현실적인 목적을 위하여 수행되는 인위적(artificial)인 수단으로 경시한 것이다.
니덤이 과학이나 기술문제를 사회 경제적 상황에 기초해서 설명한다 해서 마르크스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 비판이 공정했는가는 별개로 니덤은 사회 경제적 상황이 과학발전을 결정한다는 것에 머물지 말고 한 걸은 더 나아가서 기술을 무시하는 그 사회 경제적 상황이 왜 생겨났으며 16세기 이후의 유럽에서는 왜 그와 다른 사회 경제적 상황이 형성되었는가에 대해서도 따져 보았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그는 해당 지역의 ‘세계관’이 기술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수 있다. 대부분의 고대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에도 공산주의가 지배하기 전 까지는 ‘유기적 세계관’(organismic world-view)이 지배했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그 자체로 신성하며 모든 부분은 모든 다른 부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인간도 우주를 반영하는 하나의 소우주(microcosm)로 몸의 사지(四肢)는 4계절의 모형이며 두 눈은 해와 달의 모형이라고 생각했다. 잘 알려진 “개인이 수양에 힘쓰고, 가정을 잘 단속하고 나라를 다스려야 천하가 태평해진다”(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명구나 “하늘(자연)에 순응하는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스리는 자는 망한다”(順天者 興, 逆天者 亡)는 주장은 모두 유기적인 세계관을 잘 반영한다.
고대 그리스에도 유기적 세계관이 지배했다. 기술은 자연을 모방한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요리는 태양에게, 방직은 거미에게 배운 것이라 했다. 자연은 본래적이고 기술은 인위적인 것이므로 열등한 것으로 취급했고, 기술로 자연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무엄하므로 천벌을 받는다고 본 것 같다. 밀랍으로 새를 만들어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태양열에 녹아 떨어져 죽은 이카루스 신화가 그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성경은 기술을 경시한 고대 문화의 일반적 경향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출애굽기에 성막, 제단, 기물을 제조한 기술자들이 언급되는데 그들의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되어 있고 사도바울은 학자였으면서도 육체노동을 수행함으로 당대의 그리스 지식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다른 고대문명들과는 달리 성경은 기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종교와 현대과학의 출현>(Religion and the Rise of Modern Science)을 쓴 호이카스(H. Hooykaas)는 16세기에 현대과학이 출현한 것은 종교개혁이 그 때까지 서양문화를 지배했던 유기적 세계관을 ‘기계적 세계관’(mechanistic world-view)으로 바꿨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자연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므로 그 자체로 신성하거나 생명을 가진 유기체가 아니라 사람이 지배하고 이용할 수 있는 물질세계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이후 과학자들은 그 전과는 달리 아무 거리낌 없이 자연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현대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이렇게 발달한 현대과학이 기초가 되어서 과학기술이 발전될 수 있었다. 중국의 기술(technique)은 주로 축척된 경험과 임기응변의 재능에 의한 것이라면 서양의 과학기술(technology)은 자연과학의 지식을 응용한 것이므로 자연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뛰어났던 중국의 기술이 16세기부터 서양에 뒤지기 시작한 것은 자연과학의 기초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땅을 파면 평토제(平土祭)를 지내야 하는 동양과 달리 종교개혁 이후의 서양은 “땅을 정복하라”는 성경의 명령은 기술발전을 더욱 촉진했을 것이다.
과학기술 때문에 생태환경오염이 일어났고, 기독교 때문에 과학기술이 발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역사학자 화이트(L. White Jr.)는 오늘의 심각한 환경오염에 대해서 기독교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다만 풍요와 사치에 대한 인간의 지나친 욕심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로 기술이 경제적 이익과 연결되어 현대기술은 신의 세계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한 프로메테우스가 되고 말았다. 기술이 돈을 벌게 하고, 돈이 있어야 새 기술을 개발하는 순환작용이 회오리바람으로 일으켜서,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위한 도구로 기술을 개발하고 감사와 절제로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술개발 그 자체가 목적으로 둔갑하고 있다. 현대인의 우상으로 등극하고 있어 기술개발과 발달이 주어진 세계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세계관을 결정하는 상황으로 바꿔지고 있다. 사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점점 사람의 통제를 벗어나 자율성을 가진 세력으로 변신하여 오히려 사람을 지배하고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마저 위협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실업자와 빈부격차는 늘어나고 기술로 충족되는 욕망은 참다운 행복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첨단 기술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직업만족도가 1987년의 61%에서 2016년에 51%로 떨어졌다 한다. 기독교 세계관이 대처해야 할 무서운 세계관 하나가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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