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과학기술입국’(科學技術立國)의 기치를 세우고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 개발에 열중하던 시절의 과제는 ‘어떻게’ 즉 ‘목표를 이루는 방법’(know how)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배우든 스스로 알아내든, 남의 기술과 디자인을 표절하든 ‘어떻게 하는지’를 아는 것이 모두의 숙제였다. ‘어떻게’가 중요했던 이유는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도달하고 더 멀리 가길 원한다.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명백한 목표였다. 여기서 조금 더 이상적이라면 “내가 잘 살아야겠다”가 아니라 “우리가 잘 살아야겠다” 하는 정도였다.
물론 과거에도 현대 기술의 ‘어떻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경우가 있었다. 기독교 사상가로도 유명한 자크 엘륄(Jacques Ellul)은 현대 기술의 ‘어떻게’가 가지는 위험을 경고했다. 그는 무작정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현대 기술의 발전 방식이 인간의 자유를 앗아갈 것이라 했다. 환경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서는 그런 경고에 진지하게 귀 기울인 이들은 많지 않다. 현대 기술이 이미 해결한 문제,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워낙 분명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1차적인 필요가 어느 정도 충족된 다음에는 ‘무엇’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먹는지, 무작정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명백한 문제가 아닌, 지금까지 문제인 줄 몰랐던 것을 찾아서 해결하는 시절이 왔다. 이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도 과거보다 더 커졌고, 새로운 문제의식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문제 발견과 문제 해결’이란 키워드가 등장했다. 성공사례는 ‘우버’(Uber)나 ‘에어비앤비’(AirBnB) 같은 신사업들이다. 빈방은 늘 있었고 자동차도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 여분의 공간과 시간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이 여분의 자원과 연결되지 않았던 수요와 공급을 찾아서 연결시켜 주어 새로운 시장이 생겼다. 주위에 혹시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모르는 문제를 먼저 발견해서 어떻게 해결할지를 제시하면 성공할 수 있다.
‘무엇’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새로운 필요와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걸어다니면서 TV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 식사 전에 음식 사진을 찍어서 전 세계에 알리려는 욕망을 가졌던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자동차가 굳이 스스로 운전하기를 바라거나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세상을 고대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변해 왔고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간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이 새로운 ‘무엇’들은 묘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본래 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보다 없던 문제를 보이게 만드는 기술은 기존의 질서를 흔들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교회 버스부터 ‘카카오톡’(Kakao Talk)까지 적극적으로 현대 기술을 수용해 왔지만, 인공지능이 판치는 세상에 대해선 유보적이다. 그런 세상에서 인간의 자리가 어디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한 물음은 필연적으로 ‘왜?’라는 물음을 초대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무엇들이 등장하여 우리 삶의 질서를 바꿀 때 왜 그 무엇이 개발되고 사용되어야 하는지, 그 무엇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어떻게’의 시절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던 기술 발전의 관성을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개발 시대의 한국 교회는 기술의 발전과 문화명령을 굳이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기술에 대해 ‘왜’라고 묻는 물음 자체가 생소하다. 그러나 당연한 시대의 흐름과 사조에 ‘왜’라고 물으셨던 예수님의 본을 따른다면, 오늘 우리는 범람하는 기술의 ‘무엇’을 너머 ‘왜’라고 물어야 한다.
‘왜’의 물음은 거부의 물음이 아니다. 왜 이 기술이 필요한지 물으면 어떻게 사용할지도 무엇을 개발해야 할지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크고 작은 기술에 대해 ‘왜’라고 묻는 것에서부터 거대한 기술 문명의 흐름에 답하는 기독교 세계관의 대안 모색을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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