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인터뷰어: 박문식 (한남대 기계공학과 교수, 감사), 사진&정리: 석종준 (사무국장)
일시와 장소: 2019. 7. 8. 카이스트 E2-2동 연구실
박문식: 교수님 안녕하세요. 우선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윤완철: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윤완철 교수입니다. 31년째 재직 중이고 연구 분야는 ‘인지공학’,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인공지능’(AI), ‘로봇공학’ 등 다양합니다. 최근에는 특별히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낙후된 ‘안전공학’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산업재해는 OECD국가 중 1위, 유럽의 4배, 영국의 10배나 많이 발생합니다. 지난 7월 시스템안전학회를 창립해서 대표로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는 현재 대여섯 가정이 모인 작은 공동체를 나갑니다.
박문식: 교수님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로 상징되는 최신 과학 분야들을 연구해 오셨는데요.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윤완철: 실사구시라고, ‘사실’(fact)에 입각한 학문인 과학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화학이나 생물 등의 개별 분야보다는 인간과 세상과 우주를 나름대로 총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과학 분야를 생각했고, 그 방향에서 개인적으로 귀착된 것이 ‘인지 시스템 공학’이었습니다. 여기서 인지는 인간의 정신을 말하고 시스템은 그것을 개별적이 아니라 시스템 내에서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관심사인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인공지능’, ‘의사결정 문제’, ‘지식 서비스 공학’, ‘안전공학’ 등의 연구 분야를 다 이 총체적 시스템 맥락에서 접근하려 해왔습니다. 마침 관심을 끄는 4차 산업은 바로 인간과 기술로 이루어진 시스템의 지능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국가도 하나의 ‘인지 시스템’이거든요. 사람만이 인지 시스템이 아니고 사람이 모여도 당연히 ‘인지 시스템’인데, 한 사람의 지능이 움직이는 것과 국가의 지능이 움직이는 것은 결국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가 ‘개인 지능’은 세계에서 제일 높지만, ‘조직 지능’은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직 지능’, 즉 안전 분야 등에서도 어떻게 조직체를 체계화하느냐의 문제 등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박문식: 그리스도인 과학자의 일차적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윤완철: 과학자에게 과학은 그의 일이고, 일차적으로 그 업(業)에서 사명을 받습니다. 그 때문에, 그것에 우선 충실해야지, 그것을 이용해서 종교 활동이나 복음에 기여하겠다는 이원론적 사고는 충성스러운 것이 못됩니다. 과학자라면 그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일차적 사명은 자신의 연구 분야가 되어야지, 신앙의 영역으로 대체하려는 이원론적 입장에 반대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인 ‘인지 시스템’ 공학자로서의 일을 하는데요. 이때 저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안전문제 같은 것에 더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또 세월호 같은 비극을 없애고 사람을 살리겠다는 마음이 더 간절한 ‘인지 시스템’ 공학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앙과 과학을 두 영역으로 나누고, 기독교를 창달시키기 위해서 연구를 한다는 식은 곤란합니다. 그저 과학자인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니까 비그리스도인 과학자와는 차별된 가치관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바탕이 바로 기독교세계관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박문식: 일상 속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는 언제이신가요?
윤완철: 우선 우리나라에 인지공학이나 안전공학 쪽 사람이 굉장히 부족한데, 한 사람이라도 더 저 때문에 그 분야 전문가가 양성되고 분야가 발전하는 것, 그러한 점이 보람이지요. 한 예로 한국에서 처음 안전 분야의 시스템적인 개념과 방법론들을 소개하고 보급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고, 학생들을 키우거나 실무가들을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개인 신앙적으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철이 들고, 예수님의 뜻을 조금은 더 이해해 가고 있다면 내면적인 보람이라 생각해 봅니다.
박문식: 그리스도인 과학자로서 세상에서 언제 가장 어려움을 느끼실까요?
윤완철: 개인 능력이 부족해서 겪는 것을 뺀다면, 상황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현대에서 핍박이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바람에 세상과 달라져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의미할 수 있는데요. 특히 자본주의 사회는 전체적으로 돈에 맞춰져 있습니다. 국가나 기업이나. 그러니 직장인들의 마음도 흔히 성공이나 승진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할 기회가 적게 주어지고 협력자를 얻기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일 자체의 중요한 본질에 관심을 집중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같이 일하잖아요. 그때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이 오히려 나름의 사상적 주관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더 잘 호흡이 맞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박문식: 교수님은 그러한 어려움에 대하여 어떻게 개인적으로 대처하시는지요?
윤완철: 대처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상황은 늘 어렵다고 말하는 습관이 있어요. 우는 소리로 기도를 해야 신앙인처럼 보이고, 그렇게 해야 하나님도 하실 일이 생기신다고 보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에 대해 투쟁을 한다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렇게 하나님은 세상에서 쫓겨난 셈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시며 우리에게 일과 그에 필요한 환경을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싸우고 계신다는 설정이나 세상과 싸우는 전투적인 교회라는 구도는 일부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기중심적 사고일 수 있습니다.
박문식: 교수님은 오래전(1996년)부터 ‘기독교학문연구소’의 학술지 <신앙과 학문> 편집위원장 등으로 섬기셨는데요. 기독교세계관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윤완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기독교세계관 운동이 신앙 개혁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시작했습니다. 교회 개혁이 아니라 신앙의 개혁이 필요한데요. 즉 개개인이 믿는 법을 바꿔야 되고, 우리나라 교회가 교회로서 역할하는 법을 바꿔야 합니다. 종종 기독교가 ‘목사교’가 되어 가는 경우를 바라보면서, 저는 기독교세계관 운동이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자기성찰 운동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일깨워줄 수 있는 것이 기독교세계관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문식: 오늘날 한국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세계관 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윤완철: 기독교세계관 논의는 자신이 변한다는 점에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남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기독교세계관 운동이 아니라, 우선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답게 생각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에 초점이 가 있어야 합니다. 후자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워온 습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세계관 운동은 이 생각의 습관들을 자성해서 고치고 잠재의식의 부분마저 수술한다는 개념인데요. 이것은 우리가 신앙적 지식을 얼마나 더 추가해 가느냐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 가지고 있는 것을 비우고 더 순수해진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박문식: 최근 세간에는 미래과학 기술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어느 쪽을 더 크게 보시고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윤완철: 양면적이긴 합니다만, 인문학 쪽에서 생각하면 미래과학 기술은 사람을 많이 퇴행시킵니다. 인지과학적으로도 실제 퇴행을 느낍니다. 옛날에는 원고지를 사용해서 몇 페이지의 문장까지 다 생각한 다음에 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단 쓰고, 복사 붙여넣기로 바꾸면 되니까, 점점 관련 뇌 기능이 퇴행합니다. 과학정보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나타난 정보의 폭격 문제는 더욱 심각한데요. 가령 빅테이터의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변화가, 주로 먼저 고객이나 대중의 경향을 알아내는 데 사용되거든요. 누군가가 사람의 감정을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시대의 개막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죠. 바야흐로 소설에 나온 감정공학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하지요. 과연 이러한 시대가 예수 믿기에 좋은 환경의 시대인가 그 반대인가를 말이죠. 옛날에는 달리기 잘하고 토끼를 잘 잡고 하는 사람이 유능한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수많은 정보를 누가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잘 다루며 심지어 그것을 잘 조작할 수 있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많은 경우 본래 것들에 대한 가치와 능력이 전도됩니다. 그저 과학기술에 최적화된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자가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발전되는 부문이 중요한 부문이라고 관심이 집중됩니다. 인간 사회의 본래적 가치가 아니라 최신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계속 새 영역이 만들어지고 그것에 의해 가치가 좌우되고 하는 점에서 불안함을 느낍니다.
박문식: 이 땅의 지성인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이 기독교세계관 운동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보시는지, 만약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윤완철: 만일 기독교세계관 운동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가 세상을 본 원리에 합당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자는 운동이라면 당연히 가장 필요합니다. 그런데 만약 기독교세계관 운동이 미리 만들어 놓은 어떤 틀에 입각한 미션을 수행하자는 쪽으로 간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또 신앙의 상층에 어떤 철학적 배경을 갖추고, 내공 있고 족보 있는 생각을 해서, 거기서 오는 권위를 행사하려 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자신이 석사고 박사고 교수쯤 됐으니까 지식인으로서 교회에서도 뭔가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자는 식의 동기는 좋지 않습니다. 기독교세계관 운동은 자신이 누구든 상관없이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 어떤 것을 요구하고 생각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 방향에서 실천하는 힘이 나오고, 서로 그것을 나누고,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운동성이 생기는 의미라면, 더 많은 이들이 기독교세계관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문식: 우리 시대 교회 지도자들(평신도 &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일차적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윤완철: 그리스도인은 누구일까요? 예수에 관한 사상이나 말들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 자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교리체계를 믿는 사람들이기 전에 예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을 지도해야 하는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교리체계만 제시한 채, 삶의 내용이 될 예수의 말씀을 등한히 하고, 그 빈 자리를 자신의 근거 없는 애드립으로 대신 채운 중개인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잘못에서 특정 이데올로기에 종속되고 오염된 교인들의 문제도 양산되고 있다고 봅니다. 오직 예수와 그의 말씀을 믿는 자리로 돌아가면 됩니다.
박문식: 마지막으로 기성세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의 젊은 세대(2030) 그리스도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윤완철: 지금은 제대로 공부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잘 믿어봅시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4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