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원자력 발전 산업은 다른 많은 산업 분야처럼 다양한 기초 공학이 응용되는 분야인 동시에 원자력 산업을 위한 전문 공학 또한 발달된 분야이다. 원자력 산업에 응용되는 기초 공학은 기계, 전기, 재료, 컴퓨터 등으로 다양하며, 원자력 공학에는 원자로 물리, 열수력 등 세부적으로 특화된 전문 분야가 존재한다. 여러 가지 원자력 산업 중에 단연 규모가 크고 잘 알려진 것은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 발전일 것이다.
얼핏 원자력이라는 단어는 원자력 산업이 최신 기술을 반영하고 첨단기술이 집약된 산업 분야라는 느낌을 주지만, 실상이 꼭 그렇지는 않다. 반도체, 이동통신 등의 분야에서는 혁신과 첨단이 미덕이라면, 원자력 산업에서는 사용되는 특정 기술이 오랜 기간 검증되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가 설계수명이 짧게는 30년에서 길게는 60년에 달하는 신뢰도와 내구성이 중요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계의 보수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속한 원자력 산업계의 계측제어분야에서는 무선통신기술의 적용과 사이버보안이라는 비교적 최신의 기술적인 이슈가 존재한다. 이에 이 글에서는 두 가지 기술적인 이슈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슈를 접하며 생각해 본 바를 나누고자 한다.
원자력 산업계라는 특수한 산업생태계에서 무선통신 기술은 꽤나 도전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과거의 무선통신이 장기간을 고장없이 버틸 수 있는지를 보는 신뢰도에서 실제 케이블을 이용한 통신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한 방사선사고 발생 시 무선통신을 위한 디지털 계기들의 내구성이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안전을 위한 규제와 설비개선으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의 운영비용이 가중되면서, 발전소 운영의 효율성을 추구해야 할 필요도 동시에 증대되었다. 또한, 무선 통신을 비롯한 외부 기술의 수준도 나날이 발전하여 동일한 기술에 기대되는 편익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무선통신의 기술이 원자력 산업계에서 새로 접목되는 기술이라면 이미 업계에서 발생한 기술 변화로 인해 새롭게 부상한 분야가 바로 사이버보안이다. 원자력 발전소 계측제어설비의 경우 기존의 구형 아날로그 설비들의 교체 시기가 도래하면서, 기술 발전으로 인해 더 이상 동일 설비로 대체가 불가능한 설비들을 중심으로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계측제어 설비의 도입은 발전소 운영 측면에서 많은 효용과 신뢰성 향상을 가져왔지만, 반대급부로 새로이 디지털 설비에 대한 전자적침해행위, 즉 사이버공격을 대비할 필요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지난 2015년 관련법이 개정되며 국내 원자력 시설들은 본격적으로 사이버 공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내가 소속해있는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은 관련 법령에 의거하여 국내 원자력시설에 대한 보안관점에서의 규제활동을 정부의 위탁 업무로 수행하는 규제전문기관이다. 사이버보안 규제기준을 발간하고 이에 따른 원자력시설들의 이행결과를 심·검사 활동으로 평가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학업을 마치고 2017년에 입사하여 상기 업무에 참여하게 되면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기관의 사명과 고유 업무에 대해 느꼈던 첫 인상은 규제기관이라는 곳이 원자력시설의 안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이 애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자력이라는 기술은 잘 활용하면 인간에게 유익할 테지만 잘못 사용되면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평화로운 목적으로 이롭게 사용하고자 많은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았다.
업무를 하며 다소 우려가 되는 점도 있어 항상 이를 유념하며 맡겨진 일을 감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먼저는 선한 목적에서의 기술 통제가 자칫 본말이 전도되어 통제를 위한 통제로 발목을 잡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이다. 업무에 매몰되어 있다 보면, 각종 규제행위들의 본래 목적과 취지가 무엇이었는지는 찾아볼 수 없고, 그 행위를 위한 각종 부수적인 일들로 인해 규제자나 피규제자 모두 곤혹스러워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수반되는 모든 일들이 불필요한 일은 아니고, 법으로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처리해야 할 테지만, 모든 규제행위에 있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관습대로만 일을 처리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모두에게 덕이 되도록 업무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앞에서 소개한 사이버보안과 무선통신 기술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그 기술을 통제하려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는 사례인데,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하게 된다. 기술의 문제점을 기술로 극복하려는 연결고리에 대한 성찰과 대안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기술이 사람을 수단으로 부리며 기술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사람을 일하게끔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지상명령인 세상을 조화롭게 다스려 나가야 할 선한 청지기로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서 어긋난 현실을 인식하고 회복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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