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예술에는 질풍노도와 같은 난폭한 기류가 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옛날부터 ‘진리에 이르는 길’로 받아들여져 왔건만 계몽주의 이후 그 지위와 역할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화가는 ‘영원’과 ‘생명’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고 시각과 촉각으로 포착한 것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예를 우리는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 Goya)의 저 유명한 <5월 3일>(1814)에서 찾아볼 수 있다.(그림1)
(그림1) 프란시스 고야, 마드리스에서의 5월3일, 1814
이 작품은 스페인을 침공한 프랑스 군인들이 수천 명의 스페인 농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프린시페 피오(Principe Pio) 언덕의 뒤쪽은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으며, 저 멀리 성당은 무기력하게 어둠속에 묻혀 있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학살이라는 잔인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미구엘 감보리노(Miguel Gamborno)의 판화 <다섯 발렌시아 수도사의 처형>(1813)에 등장하는 구도를 차용한 것으로, 도상에서 수도사들은 천주께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있다.(그림2)
(그림2) 미구엘 감보리노, 다섯 발렌시아 수도사의 처형, 1813
학살의 사건을 고야는 자유의 쟁취의 관점에서, 감보리노는 순교의 관점에서 각각 다루었다. 두 도상의 차이를 낸시 피어시(Nancy Pearcey)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순교자 그림에서 희생자는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정의를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나 고야의 희생자는 살인자들에게 절망적으로 호소한다. 전통 기독교 예술에서 순교자는 그리스도의 대의를 위해 고통받는 신앙의 영웅이다. 그러나 고야의 희생자는 끝없이 이어진 대열 안에서 ‘덧없이 죽어가는 이름 모를 수백만명’중 하나에 불과하다.”
고야의 그림에서 희생자들은 두려움과 함께 저항을 외치나, 감보리노의 그림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구한다. 고야의 그림에선 밤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는 반면에 감보리노의 그림에선 하늘에서 천사들이 면류관을 들고 내려와 순교자의 간구에 응답하고 있다. 전자의 그림에선 어떤 자비도 없이 초근접 거리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끔찍한 살상 현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에, 후자의 그림에선 순교자들의 절절한 간구와 이 기도를 듣고 황급히 달려오는 천사들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두 그림에서 보듯이 화가가 어떤 관점(세계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커다란 진폭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주제의 연작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해석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멕시코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1867)이다. 이 작품은 멕시코에 있던 프랑스 군대가 철수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 황제가 후아레스의 자유주의 정부에 의해 총살된 사건을 주제로 한 것이다. 만약 고야가 사건의 내적 진리나 중요성을 진술하는 견해를 취했다면, 마네는 사물의 겉모습만을 묘출함으로써 가치중립적인 자연주의를 고수하였다. 마네의 그림에는 인물에 대한 공감이나 감정이입이 일체 배제되어 있다. 화가는 그저 사형을 집행하는 군인들을 아무 감정없이 묘사할 뿐이다.
기독교예술가들도 경험적인 세계를 존중하고 그것을 예술로 나타냈다. 조르주 루오(Georges Henri Rouault)의 야경그림을 살펴보면, 휑한 거리에는 차량도, 인적도 찾아볼 수 없다. 삭막하고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그림3)
(그림3) 조르주 루오, 교외의 그리스도, 1920
루오는 이런 곳에 어른 한 명과 두 아이를 등장시켰는데 부모 없는 아이를 돌보는 그리스도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 그림에는 고야나 마네의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긍휼의 리듬’이 정적을 깨뜨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직접 생령을 불어넣으시고 그리스도가 이미 죄의 값을 지불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의 세상을 ‘은총의 관점’으로 대체할 때 감동적인 작품이 탄생한다.
사고의 관점에 따라 미술은 다르게 표현된다. 고야와 감보리노, 마네와 루오의 그림이 각기 다른 것은 그들이 세계관의 어느 지점에 서있고 무엇을 섭취하고 있느냐가 해석의 열쇠가 된다. 그런데 고야와 마네는 눈에 보이는 사실성의 추구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위대한 클라이맥스, 일상적인 현상이 지닌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의미를 간과하고 말았다.
어떤 미술인은 신앙을 가진 후 화단(畫壇)을 떠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초래하는 미술을 하는 것과 신앙생활의 양립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결단이 얼마간 이해는 가지만 그것이 과연 최선책인지는 의심스럽다. 그가 화단을 떠난 것은 예술이 완전히 타락하여 죄의 나락에 빠져 있다는 것인데 나는 바로 이점 때문에 그리스도인을 부르셨다고 여긴다. 로크마커의 권고처럼 우리 문화의 딜레마를 면밀히 연구함으로써 그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선지자적 역할이 요구되는 곳이 바로 험지인 일터일 테니까.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4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