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자크 엘륄 / 이상민 / 대장간 / 2013
<기술 체계>(1977)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신학자인 자크 엘륄(Jacques Ellul 1912-1994)의 사상의 요체를 드러내는 저서로 평가된다. 그는 이 저서에서 기술 사회 내부에서의 기술을 ‘체계’로 간주하여 연구하면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체계가 되어버린 ‘기술 체계’ 속에서의 인간의 상황과 위상을 묘사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현대 사회의 열쇠를 기술적 요인에서 찾아야 함을 보여주면서, 기술 현상이 삶의 다른 모든 면을 재구성하고 인간 자신을 점차 개조하는 현대 사회의 결정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기술은 합리성, 인위성, 자동성, 자가 증식, 단일성, 기술들의 연계, 보편성, 자율성 같은 자체의 특성들을 통해 중립적 실체가 더는 아니라, 신성한 힘을 부여받은 비인격적인 권세가 됨으로써, 인간은 기술을 신뢰하고 숭배대상으로 삼는다. 인간은 기술을 통제할 수도 제한할 수도 없고, 심지어 기술의 방향을 설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기술은 정치나 경제보다 더 사회의 결정 요인이 된다. 기술 세계는 인간에게 하나의 환경이 되어버림으로써, 인간은 그 기술 환경 속으로 들어가 거기에 통합된다. 따라서 그러한 인간이 무엇을 보거나 혹은 무엇을 사용하든지 그것은 기술적 대상이며, 인간은 안락과 효율성을 위해 만들어진 그 기술 환경에 따라 사고한다.
그런데, 기술은 우리 시대에 주요 요인이나 혹은 결정 요인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질서와 비합리성과 비일관성을 사회에 유발하고 사회적 환경을 위태롭게 하는 ‘체계’가 된다. 스스로 생성되는 맹목적인 체계는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고, 자체의 잘못을 바로잡지도 못한다. 더구나 자기 뜻대로 기술을 사용하고 통제한다고 자부하는 인간 자신도 기술적 대상이 되어버림으로써, 사실상 기술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고, ‘기술 체계’ 속에 편입되어 기술 체계에 완전히 종속된다. 특히, 내적 조정 현상인 ‘피드백’(feedback) 현상을 박탈당한 기술은, 근본으로 돌아가 체계의 여건을 변모시킬 수도 없고, 자체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만이 기술의 잘못된 방향을 바꾸기 위해 개입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이 가능하면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는 원리, 다시 말해 기술이 존재하면 그 기술을 사용한다는 원리에서 인간은 벗어나지 못하기에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기술 체계’ 속에서 기술적 요인에 의해 변화되는 인간은 기술을 이용하기보다 기술을 섬기는 존재가 된다.
‘기술 체계’가 그 속에 자리 잡는 기술 사회와 관련된 거짓된 이데올로기로서 ‘기술 담론’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데 있어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기술 사회를 제시할 뿐 아니라, 인간의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서 기술 사회를 제시하면서, 기술 사회가 인간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정당화한다. 그러한 ‘기술 담론’이 은폐하려는 기술의 다양한 측면 중 하나는 기술적 진보의 ‘양면성’이다. 즉, 기술적 진보는 극심한 환경 파괴와 극도의 사회적 속박이라는 대가를 치른다. 더욱이, 기술적 진보는 기술적 진보 자체가 해결하는 환경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한 환경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기술 담론’이 은폐하려는 기술의 측면 중 다른 하나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오늘날 ‘기술 체계’가 너무도 복합성을 띠고 있는 나머지, 불가항력의 재난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모든 것을 예측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반드시 필요한 예측 가능성은 정보의 과잉으로 불가능하고 불확실성이 지배하므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런데도, 기술 체계가 너무도 발달한 나머지 모든 사람이 모든 활동 분야에서 기술의 요구에 순응할 뿐 아니라, 기술이 결국 인간을 해방시킨다고 믿을 만큼 기술을 신성시하고 기술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 때문에, 엘륄은 현대인이 무분별한 기술적 성장을 정당화하는 ‘기술 담론’의 현혹에 빠져드는 것을 경고하고, 현대인을 그런 현혹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애쓴다. 결국, ‘기술 담론’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앞으로 다가올 엄청난 전 세계적 혼란에 대비할 수 있게 한다.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인 소위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현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사물인터넷, 스마트폰,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공학 기술로 대표되는 기술 문명에 완전히 사로잡혀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인간은 무엇이 자신을 통제하고 조종하는지 모른 채 체계와 조직에 순응해 살아가면서, 그 거대한 체계를 구성하는 한 부품으로서 체계가 잘 작동하도록 자신의 기능을 수행할 따름이다. 따라서 ‘기술 체계’를 중심으로 하는 엘륄의 기술 사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사상을 토대로 행동 방향이나 실천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면, 현대의 기술 문명 속에 사로잡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4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