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조교수님은 경북대학교에 가시면 김중락, 전창진, 문계완 형제를 만나보세요”
1986년 초 경북대학교 부임을 앞 둔 시점, 먼저 경북대학교에 가 계셨던 양승훈 교수님이 시카고 대학으로 포닥을 떠나시면서 내게 부탁하신 말이다. 사실 양교수님과의 만남은 과학원 성경공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과학원에서 수수한 옷차림에, 가끔은 흰 고무신을 신고, 우리 경영과학과 성경공부에 와서 도움을 주곤 하였다.
산학장학생으로 공부한 나는 졸업 후 인천에 있는 대우중공업에 근무하게 되었다. 근무 중, 운이 좋게도 인천대학교 산업공학과에 강의를 나가게 되었다. 장경 교수님 연구실에서 “기독교대학”이라는 팸플릿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여기서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라는 구절이 눈에 띄었다. 순간적으로 ‘말이 맞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과 학문연구가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개념이 내 머릿속에 처음 들어 온 순간이었다.
양교수님 조언대로 김중락, 전창진, 문계완 형제를 만났다. 둘은 박사과정이고, 한 사람은 석사과정이었다. 나이는 나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 때 내 나이가 만 27세이었으니. 세분은 참으로 신실하였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런 신실한 형제들이 모교의 교수가 되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세 사람 다 유학을 다녀와 현재 경북대학교 동료 교수로 섬기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기독교 세계관 공부를 하였다. 도예베르트, 리틀톤, 생소한 철학 분야의 책들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듯 모르는 듯 지나갔다. 그런데 세계관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세계관을 들여다보니 내가 공부하는 학문의 근거와 기초를 알게 되고, 그 역할과 한계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 경영, 회계적 테두리 안에서만 공부하던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후 경상대학 학생들과 성경의 경제관, 경제시스템 등에 대한 책을 이어갔다. 경제문제의 출발은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나, 이를 충족시키는 자원은 유한하다’는 희소성의 원칙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경제문제는 1) 어떤 물건을, 2)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 3)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에 대한 답을 주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경제시스템은 여기에 대한 대답을 주는 인간이 만든 경제체제이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부의 생산은 성공하였으나 부익부 빈익빈의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평등을 주창한 사회주의는 부의 생산에 실패하여 국민 전체의 빈곤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이 두 이념을 조화시키고자 사회적 자본주의 등 중간시스템도 만들었지만, 효율과 평균은 양쪽으로 뛰는 토끼와 같아서 어느 시스템도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지 못하였다.
그런데 성경은 이 둘 중 어느 것을 지지하고 있을까? 놀라운 것은 이 성경의 경제원리에서는 효율과 평등, 두 개념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구약의 경제제도를 보면, 자기 땅에서 난 소출은 주인의 몫이지만(효율성), 추수 시 떨어진 이삭이나 안식년에 자연 발생한 곡물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고아, 과부, 이방인의 몫으로 남겨두라(평등)고 하고 계시다. 성경이 경제학 교과서는 아니지만, 우리의 경제 문제에 대하여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내가 경북대학교에 오면서 바랐던 또 하나의 소망은 “나의 전공인 회계학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되는 일을 할 것인가?”였다. 이때 한 선교사님의 권유로 돈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게 되었다. 이를 통하여 우선 내 자신이 많은 축복을 받았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뜻이 아니라, 돈의 용도와 의미를 알게 되니 돈에서 자유함이 생겨 돈 걱정이 덜해졌다는 뜻이다. 성경적 재정관리에 대한 교회에서의 반응도 뜨거웠다. 그 만큼 우리 삶에서 돈에 대한 매임이 크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나의 고민은 회계학 연구가 성경과 연결이 어렵다는 점이다. 회계학 논문들은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는 실증 연구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테크니컬하여 성경적 개념이 들어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 주된 연구 분야가 성경과 유리된 이원론적 삶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이원론적 연구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나의 과제이다. 최근 회계제도론적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이를 통하여 우리 사회의 경제적 이슈들을 다루고자 시도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물신주의를 극복하는 연구를 좀 더 체계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아직은 시도 단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주신 달란트인 회계 전공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진리를 알게 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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