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책추천: 웨슬리 웬트워스 (Wesley Wentworth, 재한 미국 선교사, 1965~현재)
번역: 황영철 (수원 성의교회 목사)
오늘날 학문 세계에서 종교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 학문적 토론에서 종교를 가진 신자들의 관점이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는 이 명쾌하고 예리한 책에서 막스 베버와 존 로크로부터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찰스 데일러를 망라하면서 종교 지향과 목소리가 현대 대학에 자리를 가지고 있음을 논증하며, 그 자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개요를 보여 준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 50년 동안 지식을 이해하는 방식에 관하여 학문 세계에서 발생한 괄목할 만한 변화를 추적한다. [이하 글은 마이클 매카시의 <학문 세계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What is the role of religion in the academy? American the Jesuit Review, 2019)를 번역한 전문이다.]
나의 동료가 한번은 현대의 대학에서 정말로 종교의 자리는 없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예수회’(Jesuit) 기관에서 오래 동안 학문 활동을 했으며, 어떤 행정적 결정이 불만스러울 때에는 우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예수회 가치’에 호소했으며, 자신이 선교 지향적인 곳에 있다는 것에 대해 전반적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그런 가치들의 근거가 되는 어떤 종교적 비전에 대해 말할 때에는 걱정스러워 했다. 그녀는 현대의 대학은 ‘세속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그녀가 ‘세속적’이라는 말로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내게는 한 번도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주장은 내가 오래 동안 품고 있었던 신념을 항상 확증해 주었다. 즉, 대학교에서의 어떤 종교의 정당한 위치에 대한 주장은 사회 전체에서의 종교의 위치에 대한 관념을 요약적으로 보여 준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우리가 ‘종교’나 ‘세속적’과 같은 주제들에 대해 말할 때에 사용하는 용어들이 자주 제대로 정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01년 예일대학교에서 행해진 일련의 강의들을 다시 정리한 그의 저서 <대학교에서의 종교>(Religion in the University)에서 월터스토프는 학자들이 견지하고 있는 일련의 가정들을 검토한다. 그는 노트르담 대학교 같은 ‘종교적 대학교’가 아닌 예일 대학교 같은 ‘세속적 대학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시작한다. 그는 예일 대학교 같은 그런 대학교에서 종교적 목소리를 위한 자리가 있는지를 질문하면서, “의미, 가치, 의무, 가치관 같은 것들은 학문적 활동 자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막스 베버를 거론한다. 그런 견해가 19세기, 20세기의 ‘연구 대학교’의 분위기를 지배했지만, 최근에는 그런 견해가 도전을 받고 있다. 연구가 어떤 맥락을 가진다는 사실이 점점 민감하게 인식되면서, 학자들은 개별성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 월터스토프는 이것을 페미니스트, 마르크스주의자, 라틴계 등과 같은 ‘인물 정체성’(character identities)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종교적 목소리가 자리를 확보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다시 월터스토프는 종교의 ‘비합리성’에 대한 편견이 학문 기관에 어른거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 장 ‘종교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Religion)에서, 그는 그런 편견을 밀도 있는 철학적 논증으로 반박한다. 사실 학문적 배움이란 “규범으로 가득하며 목적을 지향하는 사회적 활동”이다. 그 결과 학문 기관들은 그가 ‘대화의 다원성’(dialogical pluralism)이라고 부르는 핵심적 윤리를 필요로 하는 지적 불일치의 장소이다. 종교적 신념을 포함하여 다양한 신념을 가진 참여자들은 서로의 이유를 제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유를 듣기도 한다. 열린 마음으로 그것들을 들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바른 방식으로 ‘대학 속에 종교’를 도입한다면, 우리는 긍정적인 방식으로 차이점에 대처할 수 있는 더 잘 준비된 시민들과 지도자들이 세상에 들어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비전은 소망스러운 것임이 분명하다. 이 비전은 우리의 캠퍼스 너머로까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인 사람들만이 이 교만한 배제주의를 가진 것이 아님을” 목격하면서도 이 “광대하고 다원적이며 다면적인 대화”에 참여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을 월터스토프는 인정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말하기가 어려워진 이 현상은 대학이라는 현장에서만큼 현대 사회에서도 심각하다. 이 어려움은 세계 전체가 그렇다는 것을 반영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믿기로는, 가치중립적 ‘학문’(Wissenschaft)에 대한 베버 주장의 긴 그림자보다 오늘날 고등 교육에서의 진정한 대화에 더 위협이 되는 것은, 종교적인 또는 형태적인 면에서 서로 다른 집단들이 자기 구성원들 속에서 만들어낸 더 넓은 우리의 사회적 상황과 기대들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바른 방식으로 ‘대학 내의 종교’를 도입한다면, 우리는 긍정적인 방식으로 차이점에 대처할 수 있는 더 잘 준비된 시민들과 지도자들이 세상에 들어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속적 대학’과 ‘종교적 대학’은 나름의 독특한 평판들과 관행들을 견지하겠지만, 만약 그들이 ‘대화의 다원성’에 함께 집중한다면, 나는 그들이 나의 이전 동료가 주장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실로 월터스토프의 생각처럼 서로 다른 교육 기관들의 다원성 그 자체가 미국에서의 고등 교육을 더욱 비옥하게 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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