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그리스도인 연구자로서 나의 ‘섬김’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사실 감히 ‘섬김’의 경지에 이르지도 못했다. 물론 실패와 성공의 평가가 자의적일 수 있지만 적어도 나는 객관적 결과에 근거해서 나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위험하거나 어려운 일을 담당했던 것은 아니다.
성경에는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가 훨씬 많다고 해서 나의 실패를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 이를테면 하나님은 10여명의 사사를 직접 임명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하셨으나, 사사기는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는 증언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현재 직장인 명지대에서 2008-2009년 ‘크리스천최고경영자과정’(C-LAMP)을 맡아서 기독교인 리더십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전임자 교수가 이 과정을 태동시켰고 나는 5기 모집과 운영을 맡아서 7기까지만 운영하였다. 물론 대내외 환경 변화로 인해 학교 경영진이 운영 중단을 결정했지만, 나는 2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년 반 만에 ‘섬김’에 실패했다. 2년 반 후 학교 밖에서 ‘크리스천최고경영자과정’ 동창회 리더들과 개인적으로 8기 운영에 재도전했으나 12기까지 근근이 버티다가 역시 중단했다.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20대 청년구역을 맡아 지난해에 이르기까지 9여년 동안 섬겨왔으나 역시 실패했다. 내가 맡은 구역 성경모임은 해마다 재구성되었지만 활성화된 적도 거의 없고 청년들의 신앙생활에 선한 영향을 끼친 적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자평한다. 이제 대부분 30대가 되었는데 그 때 그 구역장이라고 기억하면서 연락을 하거나 찾는 청년들이 거의 없는 사실이 이러한 자평의 근거이다.
2015년부터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이하 동역회)의 실행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은 또 한 번의 실패의 출발이었다. 첫 2년간은 사무국 간사들이 모든 업무를 너무나 능숙하게 처리해 주어서 나는 무임승차나 다름없이 매달 한두 번 사무국을 방문해서 점검하고 서명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2017년 2월 24일 아무런 전조도 없이 정오 무렵 내가 갑자기 혼미 졸도한 사건을 겪으면서 ‘섬김’의 역할은 자질미달과 기회상실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 동역회가 전혀 예상치 못한 외부 요인에 의해 오해와 분열과 갈등의 자충수를 자초한 시기에 나는 사무국과 실행위원회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나서지도 못하고 먼발치서 방관하고 있어야만 했다. 당시 약 8개월 동안에는 자주 분노와 좌절에 함몰되었다. 나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섬김’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나는 ‘섬김’의 희생을 체득하지 못했고 ‘섬김’의 목적과 합리적인 문제해결을 동일시했다. 착각이었다. ‘섬김’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인 점을 몰랐다. 더욱이 그 연결고리는 하나님에 의해 견고해질 수도 있고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무지불식 간에 간과했다. 상황의 흐름은 나의 예상이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치달았고 나는 ‘섬김’에 실패했다.
당시 세 분의 선배 동역자께는 나의 정당성(?)을 명분삼아 언성을 높이며 무책임한 발언과 태도를 추궁하기도 했다. 이 지면을 통해 정중히 사과드린다. 동역회 사무국 실무 간사들과도 언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마침내 사무국 간사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동역회를 떠났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당시 실행위원장이었던 나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었던 것은 명백하다. 동역회를 떠난 간사들에게 지금 다시 정중히 사과한다. 2017년 9월 나는 실행위원장직의 책임을 통감하고 중도 사임을 했으며, 당시 부실행위원장이었던 박동열 교수(현 실행위원장)께 대행을 간청했다. 지금도 여전히 박 교수께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내가 기독교 세계관을 처음 인지하게 된 계기는 1994년경 유학 시절이었다. 강영안 교수께서 프랑스 파리를 방문하셔서 세 차례 오붓한 좌담회를 가졌는데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Levinas)의 ‘타자’(他者)에 대한 윤리 개념을 강론하시면서 기독교 세계관을 일깨워 주셨다. 사이어(James W. Sire)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을 추천해 주셨는데, 흥미롭게 학습하면서 호기심을 확장시킬 수 있었던 첫 독서였다. 2000년 기독교학문연구회에서 생명윤리를 다루는 학술대회에 참석한 이후 경제분과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약 20년 동안 무수한 독서와 토론과 학습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의 안경으로 ‘국제경제학’(국제통상학)을 탐구해 보려고 했지만, 이 역시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변방에서 북소리만 울려 왔다. 나는 그리스도인 학자로서도 ‘섬김’의 자질과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섬김’은 일상의 현장에서 시작하고 마무리된다. 나는 실패한 ‘섬김’을 초라하게 되돌아본다. 거창한 명예회복이나 굴복하지 않는 재도전은 전혀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과 동역자들께 참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이지만 나는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 내가 다시 어떤 ‘섬김’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인지할 때까지 근신하며 기다려야 한다. 나의 새로운 소명이 뚜렷해지기까지는 현재의 일상에 머무르면서 현재의 일상에 충실하려고 애써야 한다. ‘섬김’의 지향점은 성취감이 아니라 소명감임을 깨달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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