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일제 치하의 뼈아픈 역사처럼, 주권을 잃어버리면 영토와 국민이 있다 할지라도 나라를 잃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화려한 교회 건물과 수많은 성도 수를 자랑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는 ‘공평’(미슈파트)과 ‘정의’(체다카)다(시 97:2; 렘 9:2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도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행하게 하려 함이었다(창 18:18-19). 다윗 왕의 통치 원리도 공평과 정의였고(삼하 8:15), 수많은 선지자들의 경고도 화려한 예배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인 공평과 정의가 사라진 신앙 공동체에 대한 질타였다(사 1:16-17; 5:7; 미 6:6-8).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공평과 정의를 행하셨다(렘 23:6-7). 예루살렘의 화려한 성전에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들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인 공평과 정의와 사랑이 무너지고, 성전에서 돌봐야할 과부의 마지막 생활비까지 탈탈 털어가는 예루살렘 성전 종교지도자들의 탐욕과 불의로 인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경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눅 20:45-21:6).
공평과 정의를 이 땅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부채 탕감과 노예해방, 토지에 대한 권리 회복이다. 이것이 바로 일곱 번째 안식년과 함께 선포되는 희년(Jubilee)에 행하는 ‘주의 은혜의 해’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처음 회당에서 하신 말씀이 바로 희년 선포였다(눅 4:18-19). 예수님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셨다. 여기에서 가난한 자에게 전한 ‘복음’의 원어는 ‘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이다. 이를 직역하면 ‘희소식’(喜消息) 혹은 ‘희음’(喜音)이다. 그런데 구한말에 이 단어를 복된 소식이라는 의미인 ‘복음’(福音)으로 번역했다. 성경 번역 과정에서 중국에서 번역한 말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있지만, 구한말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가난과 억압, 질병과 고통 속에 살던 우리에게 복을 준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유불선과 샤머니즘의 오랜 토양 속에서 그렇게 번역함으로 기독교 신앙이 기복 신앙으로 전락하기 쉬운 토대가 됐다. 물론 희년(禧年)이란 단어에서도, 한자가 ‘기쁠’ 희(喜)가 아닌 ‘복’ 희(禧)로 사용한 한계가 있지만 희년은 억눌리고 가난한 자에게 자유와 해방을 의미하는 ‘주의 은혜의 해,’ ‘기쁨의 해’를 뜻하기에 ‘복음’의 본질적 의미가 바로 ‘희년’임을 알 수 있다.
<희년>은 희년의 관점으로 성경 전체와 교회사를 함께 관통해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제시한다. 희년이 하나님 나라의 핵심적인 가치이자,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동안 희년에 대해 깊이 연구하며 실천해 온 10명의 학자들과 희년운동 실천가들이 함께 만들었다. 1장에서는 희년이 담고 있는 하나님 나라 가치와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특히 최근 기본소득과 관련한 논의도 엿볼 수 있다(김회권). 2장에서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희년법 개념을 분석해 주었다(장성길). 3장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두 기둥, 정의와 공의에 대한 개념을 구약의 희년법을 통해 보여준다(김근주). 4장에서는 구약의 희년법 정신이 어떻게 신약에서 계승 발전되었는지를 보여준다(신현우). 5장과 6장에서는 초대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의 생애와 사상에 나타난 희년 사상을 교회사학자의 시선으로 추적했다(김유준). 7장에서는 희년을 기반으로 한 사회정의론(토지정의, 기업정의, 노동정의, 노사정의)이 소개되어 있다(남기업). 8장에서는 특권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제도와 평등한 토지권 보장을 위한 ‘좌도우기’(左道右器)의 이념으로 희년의 ‘지대공유’ 사상을 제시해 준다(김윤상). 9장에서는 평화통일을 내다보며 희년으로 본 북한 ‘상생발전’ 모델을 소개해 주었다(조성찬). 마지막으로 한국사회의 심각한 ‘부채문제’에 대한 응답으로서 희년은행을 통한 ‘희년실천’ 사례를 부록으로 소개해 주었다(김덕영, 이성영).
그동안 일반적으로 희년에 대해 구약의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많은 율법 조항의 하나 정도로 치부해왔지만, 책 <희년>을 읽어보면 희년 사상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핵심적 가르침임을 깨닫게 된다. 희년은 단순히 빚을 탕감해 주고 노예를 풀어주고 땅의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여러 가지 대안 중 하나에 불과한 단순한 경제체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구체적인 성경적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희년은 오늘날 우리 시대가 밝히 드러내야 할 복음의 본질로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희년을 50주년 기념행사의 상징적 개념으로만 생각하며 그 가르침의 본질은 외면하고 축소했지만 이제는 희년의 본질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희년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한 안내서로서, 오늘날 한국 교회의 온전한 개혁의 방향과 구체적 실천을 위한 지침을 제공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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