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0대에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바보고, 40대에도 마르크스주의자면 바보다.”란 말이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사유재산제도가 유발하는 계급차별을 제거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기 때문에 20대 청년의 이상주의적 성향과 부합하는 반면, 세상 경험을 좀 해 본 40대의 현실주의적 경향과는 맞지 않는 점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보다 훨씬 더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성, 재산, 지식, 계층 등에 따른 어떤 차별도 인정하지 않고,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말 등 이웃에게 해가 되는 어떤 행위도 금지할 뿐 아니라,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고,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겸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베버(Max Weber)는 이런 이상적인 윤리는 현실정치에 전혀 적용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렇게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명령을 원칙적으로 수용하고 전제하는 세계관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이상주의적이란 이유로 20대가 매력을 느낀다면 그보다 훨씬 더 이상적인 기독교 세계관도 다른 연령대보다 20대가 더 쉽게 수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미국이나 한국에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목회자들보다는 기독교 지식인들이 주도하고, 목회자들 가운데도 다소 이론적이고 성경의 순수한 가르침에 충실하려는 분들만 이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비슷한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식인들은 아무래도 목회자들에 비해서 이론적이고 구체적인 현실과 직접적으로 적게 부닥치기 때문에 좀 더 이상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기독교 세계관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 가운데 대학생이 많은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원생들은 현실주의적이 되어버린 40대에 속하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이론적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사유재산 제도만 없어지면 사람이 천사가 될 것이란 비현실적인 인간관 때문에 실패했다. 혁명이 일어나도 사람들이 천사가 되지 않으니까 천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제하다가 독재만 양산했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은 마르크스주의 보다 훨씬 더 이상적이지만 인간과 세상의 사실에 대한 정확하고 올바른 이해에 근거해 있다. 인간은 범죄하여 이기적이고 그리스도의 구속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 모두가 동등한 기본권을 부여받은 고귀한 존재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마르크스주의가 추구한 이상, 즉 정의와 평등사상이야 말로 바로 기독교가 인류 역사에 제공한 것이다. 인간은 비록 죄인이고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지상천국을 이룩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를 본받아 철저히 이타적인 아가페 사랑으로 이웃의 고통을 줄여주는 고귀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기독교 세계관은 철저히 이상적이지만 사실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실제로 인간의 기본권, 평등, 정의 등의 소중한 이상을 보급하고 증진하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은 청년들에게 얼마든지 매력적이 될 수 있다. 그들에게 꿈과 이상을 심어줄 수 있고 삶의 고상하고 참다운 의미를 제시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청년들이 떠나는 이유도 여기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교회가 세상의 잘못된 현실과 타협하여 세속적인 성공과 이기적인 행복을 지나치게 강조하므로 청년들이 추구할 가치가 있는 꿈과 이상을 심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청년들을 교회에 붙들어 두기 위하여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의 만족에 도취하는 세상의 청년문화에 적응하고 복음성가만 끝없이 불러대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 청년문화의 주류가 되어 있다. 사회와 교회의 부정에 대한 비판 정신도, 타락한 문화에 대한 비판 정신도 약해지고 오염된 자연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는다. 그런 문화에서 과연 청년들이 꿈을 얻을 수 있으며 이 사회를 올바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배출될 수 있겠는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타락은 주위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었다. 오늘날 교회의 타락도 비슷하다. 세상과 영합하고 현실주의적이 되면 교회는 타락한다.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세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상을 추구해야 하고, 그럴 때만 청년들은 거기서 꿈을 꿀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사회, 특히 한국의 현실이 청년들로 하여금 꿈과 이상을 논할 여유를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청년 실업률이 너무 높고 사회가 너무 밀도 높게 조직되어 비비고 들어 갈 틈이 없다. 취업도, 결혼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어려운 현실을 당면하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기성세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가난한 마을에도 아이들은 장난을 치고 난민촌에서도 젊은이들은 연애한다. 아무리 현실이 각박해도 청년들은 청년다워야 정상이지 40대처럼 현실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청년은 꿈을 꾸고 이상을 설계하도록 하나님께서 설정하셨다. 이상이 없는 청년들은 세상을 이끌 수도, 바꿀 수도 없다.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지극히 이상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꿈을 꾸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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