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서울 양재역 부근 오래된 건물 2층에 위치한 서향교회는 “그리스도를 매주 기념하는 교회, 부의 양극화가 해소된 교회,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교회, 돈이 없어도 서럽지 않은 교회, 행복한 밥상 공동체”를 지향한다. 교회 설립 일 년 후인, 2017년 10월, ‘고엘 뱅크’라는 특별한 은행이 교회 내에 설립되었다. ‘돈이 없어도 서럽지 않은 공동체’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된 ‘고엘 뱅크’의 설립 취지는 서로가 서로의 ‘고엘’이 되는 공동체 만들기, 교회 청년 중 형편이 어려운 조선족 청년 지원, 비자립 청년의 재정지원이라는 세 가지이다. 고엘 뱅크는 ‘무이자, 무담보, 자율상환’이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신용협동조합 형태의 은행이다. 이는 현재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운영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취업난을 겪는 청년들로서는 담보 제공과 상환 능력 부족으로 소액 대출조차도 꽉 막힌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서향교회 청년들은 이 ‘고엘 뱅크’를 통해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히브리어로 ‘기업 무를 자’라는 의미를 지닌 ‘고엘’에서 표현을 딴 ‘고엘 뱅크’는 갚을 수 길 없는 친족의 빚을 대신 갚아주거나 자유를 잃고 노예가 된 친족을 위해 대신 땅을 구입해 돌려줌으로써 연약한 공동체의 일원을 보호하던 구약의 ‘고엘 제도’에서 착안한 것이다. 서향교회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고엘 제도’를 통해 맘몬과 소비주의에 물든 한국 교회가 듣지 못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작고 연약하여 자칫하면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우리의 이웃들,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소외된 자, 병든 자들의 소리요, 다음 세대를 이끌고 갈 청년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소리였다.
지난 2018년 11월, 100주년 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는 “청년 부채 해방, 현실 속에서 희년의 길을 찾다”라는 주제의 포럼이 있었다. 온누리교회, 서향교회, 예수마을교회,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뜻을 함께 하였다. 한 기독교 매체는 이 포럼의 취재기사 제목으로, “빚내던 청년들이 스스로 빛날 수 있도록”이라고 달았다. 또 기사는 관련 인터뷰 분석을 통하여, 오늘날 한국 교회 다수의 청년들은 ‘현재 출석하는 교회의 문제점’을 주로 시대착오적인 섬김의 내용에서 찾고 있다며, 교회는 심적 안정과 위로를 주려 하였지만, 청년들의 삶에는 실제적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즉, 오늘날 많은 교회가 실제 삶의 터전에서 들리는 청년들의 목소리에 너무 안이하고 미흡하게 대처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 시대 많은 청년들은 ‘교회’라고 하면 대형화, 불투명한 재정구조, 구령 전도 활동에 대한 몰두, 과도한 건축, 세습, 교회 내 계급화, 목사의 자질, 사회 문제에 대한 무관심 등의 부정적 이미지들을 떠올린다. 그 때문에, 심지어 청년들은 더 이상 교회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교회는 이제라도 청년들의 현장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야 하고, 실제적인 고민과 해법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서향교회의 ‘고엘 뱅크’는 청년들의 이러한 실제적인 문제들에 보다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되려는 목적을 지향한다. 다시 말해, 돈을 무이자로 빌려주어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급한 필요를 채워 삶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도 일조하고자 한다. 현재 ‘고엘 뱅크’는 60여 명 정도의 서향교회 성도가 ‘고엘 뱅크’의 조합원이 되어 서로의 ‘고엘’이 되어주고 있다. ‘고엘 뱅크’는 조합원들의 출자금, 기금 모금 바자회 수익, 자발적인 헌금 등을 통해 기금을 조성하여 운영된다. 어느덧 2년 사이에 ‘고엘 뱅크’에서는 학자금, 의료비, 긴급생활지원비, 창업 소요 비용 등 약 30여 건의 크고 작은 대출이 이루어졌다. ‘고엘 뱅크’를 관리하다 보면, ‘고엘 뱅크’의 기금을 하나님이 운용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는 은혜까지 덤으로 얻곤 한다. 즉 ‘고엘 뱅크’의 잔고가 바닥이 드러날 때가 되면 어김없이 줄줄이 상환이 이어지거나 생각지도 않은 헌금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 안의 청년들의 절실한 필요가 채워져 그들이 기쁨과 활력을 찾는 모습은 이 섬김을 하고 있는 당사자로서 큰 보람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고엘 제도’는 이렇게 서향교회에서 ‘고엘 뱅크’를 통해 성도들에게 안전한 삶의 기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꿈을 이루어가는 여정에도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서향교회의 ‘고엘 뱅크’는 이제 조금씩 알려지면서 2019년 1월에는 CBS 뉴스에 ‘고엘 뱅크’와 관련된 기사와 인터뷰가 나가기도 했다. 거기에서 어떤 자매의 인상 깊은 인터뷰 내용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교회 공동체에서 성도가 어려움을 이야기했을 때 단순히 기도해주겠다는 공허한 말만이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고엘 뱅크’는 저에게 정서적인 안정감까지 가져다주었어요. 그리고 ‘고엘 뱅크’는 나도 무언가 해 볼 수 있겠다는 큰 용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 인터뷰의 내용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크고 작은 많은 한국 교회에 크고 묵직한 질문과 울림을 던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늘 성도의 어려움을 아주 쉽게 물으면서도 아주 쉽게 기도해주겠다고만 했던 우리의 부끄러움들 말이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교회에 서향교회 ‘고엘 뱅크’와 비슷한 기금 운용 방식이 다른 많은 교회 안으로 흘러 들어가 청년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주고 청년들의 삶을 응원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서로의 ‘고엘’이 되어줌으로써 진정한 교제(코이노니아)가 교회마다 이루어지고 청년들이 살아갈 동력을 얻게 된다면, 교회는 다시 한 번 청년들이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안전지대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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