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만 7천여 명의 학생, 5천 명이 웃도는 교원(전임, 비전임, 강사), 3천 명이나 되는 외국인 학생, 2천 명이 훨씬 넘는 직원들, 이 많은 인원들이 생활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곳이 서울대학교 캠퍼스이다. 하루 후문 게이트를 통과하는 인원만 2만 명이 된다고 하니, 대학 캠퍼스는 수많은 사람들이 교육과 연구로 서로 깊이 얽히고설키며 사는 작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학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초월적 영성, 초자연적 실재, 영적 존재로서 인간을 인정하지 않는 데카르트 후예들이 살고 있는 이성(理性)의 전당이다. 이곳에서 십자가의 도, 영성의 우위, 직관적 사유, 믿음의 세계, 성령의 역사, 기도의 능력을 주장하는 것은 미개한 것이고, 불순한 것이며 심지어 반역적인 것이 된다.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주인이시고, 나는 이 땅에 시민권이 있으나 동시에 하늘에도 시민권이 있으며, 나는 오늘도 나사렛 청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우주의 종말을 간절히 염원하면서 살고 있다고 선포하는 것은 불편한 것이 되고 매우 어색한 것이 된다. 때로는 공동체 구성원으로부터의 즉각적 이의제기, 따가운 눈총, 심지어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공공 영역에서 개인의 취향 문제를 배타적 진리로 주장함으로써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한 다원적 진리와 민주적 협약을 위배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3년 3월, 서울대학교 내, 대형 강의실에서 ‘서울대학 교회’가 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 탯줄은 1994년 미국 유학에서 막 돌아온 강신후 교수님(재료공학부), 홍종인 교수님(화학부) 등이 여러 교수님들과 정기적으로 시작한 교수기도회였다. 초창기 산파역할을 하신 교수님들의 과감한 수고 덕분으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서울대학교를 복음화하며 나아가 민족과 세계선교에 헌신”하고, “서울대 교수 교직원 학생들을 그리스도의 충성된 복음의 일꾼으로 양성하여 각 영역에 파송함으로써 이 시대의 영적 부흥을 구현”하며, “캠퍼스 선교에 헌신하는 모든 복음주의적 지역 교회와 선교단체 그리고 기독 동문들과 연합하여 복음주의 학생 운동을 창출하고 지원”하는 초교파 ‘서울대학 교회’가 탄생하였다. 현재는 ‘학부 예배’, ‘대학원 예배’, ‘국제 예배’, ‘중국어 예배’로 나누어 예배를 드리는데, 그 참석자들의 상당수는 초신자들이며, 불가피하게 지역 교회에 가기가 어려운 학생들이다. 이 신앙공동체는 정관에서 밝힌 대로 서울대 복음화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학내의 각종 신앙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결과, ‘서울대학 교회’에서는 그동안 청년들이 하나님의 복음으로 거듭나는 ‘생명의 역사’가 쉬지 않고 지속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 들어와 믿음을 잃어버린 학생들과 믿음이 연약하여 방황하는 청년들이 이 작은 공동체에서 참된 소망을 찾고,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다. 건물도, 조직도 보잘 것 없고, 재정도, 일꾼도, 프로그램도 변변하지 않는 이 연약한 공동체가 ‘생명이 생명을 낳는 일’을 지속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기까지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며 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생명의 흐름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마도 그것은 바로 신앙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깊은 돌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독특한 선교지인 캠퍼스 사역의 핵심이란 바로 ‘깊은 돌봄’이란 것이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어떤 교회든지, 믿음의 공동체든지 성도 간의 ‘돌봄’은 있겠으나, 특히 캠퍼스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서 교제하고 예배하기 때문에, 더욱 우리가 상상한 것 그 이상의 ‘돌봄’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씨줄과 날줄로 중층적으로 엮인 성도 간의 ‘돌봄’이 피어난다는 말이다. 그 ‘돌봄’은 깊은 통증과 애증을 함께 겪어낸 진한 ‘돌봄’이다. 바로 이것이 ‘교회를 교회되게’ 만든다는 생각이다. ‘돌봄’을 통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삶 속에서 깊이 체험하는 것은 종교화된 그 어떤 신앙 활동으로는 제공할 수 없는 것이리라.
이 공동체에는 말없이 겸손히 섬기시는 목사님들이 계시지만, 혹자는 담임목사가 없다는 이유로, 예배가 제사장적 예배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수들이 주도한다는 이유에서 비판적으로 공동체를 바라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캠퍼스에는 세상의 맘몬주의의 맹위(猛威)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격통(激痛)을 호소하고, 기성세대의 위선과 교회의 도덕적 타락에 상처받는 많은 청년들이 있다. 또한 극심한 경쟁체제의 승리자로 서기를 바라는 주변의 기대와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콤플렉스 등으로 아파하는 많은 청년들이 있다. 그들에게 주님의 평안과 위로가 필요하다. 그리고 예수님이 보이셨던 죽음같이 강한 사랑을 나누는 일은 너무나 시급하다. 이것이 ‘서울대학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라고 확신한다. 진실로 ‘상상을 초월한 깊은 돌봄’이 그들에게 부어질 때, 상처 난 청년들은 삶의 혼란함과 영적 눌림을 극복하고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회복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담대히 사회 현장으로 나아가서 주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본다.
‘서울대학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 바라는 일은 한 가지이다. 오늘날 사회 각 영역은 펙트의 진실설과 진리의 보전을 무의미하게 여기고 실재와 가상을 혼합해 버려 헛된 ‘신화들’과 ‘프로파간다’라는 새로운 우상에 점령당해 있다. 따라서 사회 각 영역으로 청년들을 보내어 각 영역을 변화시키는 일은 대학교회 섬김이들의 궁극적인 소망이다. 마치 나사렛 청년 예수가 수없이 귀신을 내어 쫓은 것처럼, 오늘날 복음으로 말미암아 온갖 것에서 자유하게 된 청년들이, 돈, 학벌, 성공, 성장, 신성시된 기술과 과학주의, 국가, 종교, 육체, 이데올로기 등과 같은 새로운 귀신들을 쫓아내고, 그 속에서 결박된 사람들을 진실로 해방시키는 일에 헌신하가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주님의 제자들을 한 명씩 깊이 돌보는 일이 오늘날 대학 캠퍼스 사역의 본질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참 어려운 ‘상상을 초월한 깊은 돌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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