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지난 2019년 12월 10일(화) 오전 10시. 서울 석관동에 소재한 (사)아프리카대륙비전(ACMK) 사무실에서 양승훈 교수(VIEW)를 만났다. 양승훈 교수는 카이스트 대학원 시절부터 기독교세계관 운동에 참여했다. 경북대 물리교육과 학사, 카이스트 물리학과 석사 및 박사를 취득하였으며,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과학사), 휘튼대학 대학원(신학)에서 공부했다. 경북대 물리교육과 교수(1983~1997)를 거쳐 VIEW(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을 설립하였으며, 원장과 교수(1997~2018) 역임했다. 현재는 VIEW 교수 및 쥬빌리채플 담임목사, ‘창조론오픈포럼’ 대표(2007~현재),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이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 <창조와 격변>, <창조와 진화>, <기독교적 세계관>, <창조에서 홍수까지>, <그랜드 캐니언>외 40여 권이 있다.
문준호 : 교수님, 먼저 자신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양승훈 : 저는 1997년에 VIEW(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을 설립하기 위해 캐나다에 오기까지 14년간 경북대 물리교육과 교수였습니다. VIEW를 개원한 이후에는 원장과 교수로(1998-2018), 지금은 교수로만 근무합니다. 또 2002년 일본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고, 현재 캐나다복음주의자유교단(EFCC) 소속으로, 2010년 설립된 교회, 쥬빌리채플(Jubilee Chapel)의 담임목사로 있습니다. 아울러 청년 때부터 창조론과 세계관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가르쳐왔는데, 1988년에 창간한 기독교 세계관적 학문을 위한 학술지 <통합연구>와 2007년에 창간한 창조론 학술지 <창조론 오픈 포럼> 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문준호 : 교수님은 ‘청년의 때’(1981년)부터 기독교세계관 운동에 앞장 서 오신 것으로 압니다. 그 구체적 동기나 이유가 궁금합니다.
양승훈 : 미국 선교사 웨슬리(Wesley Wentworth) 선생님의 도전 때문이었습니다. 1965년에 전문인 선교사로 한국에 오신 분이지요. 결혼도 하지 않고 줄곧 대학원생들과 젊은 교수들을 찾아다니시면서 세계관 공부와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셨습니다. 선교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9년경으로 기억합니다. 선교사님은 말만 하신 것이 아니라 관련 책과 논문도 주셨습니다. 그 중 특별히 헨드릭 반 리센(Hendrik van Riessen)의 <과학에 대한 기독교적 조망>(The Christian Approach to Science)이라는 영어 소책자를 읽으면서 지적 개종의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그 때부터 학교 후배들을 모아서 세계관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세계관 공부를 통해 저는 전공인 물리학, 좀 더 넓게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학문적 좌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상당히 이원론적인 학문관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공부를 하면서 당시 밤낮 매진하고 있었던 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저의 연구가 하나님 나라와 관련해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문준호 : 세계관 공부와 관련해서 나누고 싶은 에피소드나 추억거리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양승훈 : 아마 1986년 2월로 기억합니다. 시카고대학에서 연구할 때인데요. 웨슬리 선교사님으로부터 국제전화가 왔습니다. 몇 주일 후, 피츠버그에서 쥬빌리 컨퍼런스라는 큰 선교대회가 열리는데, 북미 기독교 세계관 분야의 훌륭한 학자들을 여러 명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셨고, 본인도 갈 것이니, 꼭 참석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참석해서 선교사님과 같은 호텔방을 사용하였습니다. 함께 지낸 며칠 동안 선교사님을 통해 큰 도전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녁에 보니, 선교사님은 잠옷도 챙겨 오지 않으셨습니다. 또 아침에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데 러닝셔츠는 큼직한 구멍이 몇 개 숭숭 뚫려 있었습니다! 당시 선교사님은 한국에서 주한미군 소속 기술자로 근무하셨기에 적지 않은 연봉을 받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헐은 속옷을 입고 다니실까? 가족도 없는 분이 월급은 받아서 다 어디에 쓰셨을까? 정말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 때 저 역시 인생에서 최고의 결단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2008년 한국창조과학회를 탈퇴할 때가 생각납니다. 형식은 탈퇴였지만 제명하겠다고 해서 탈퇴한 것이니 쫓겨난 것이지요. 그로 인해 1980년 8월부터 창립준비위원회 활동부터 시작하여 근 30여년 가까지 몸 담아왔던 창조과학회를 떠났습니다. 그 때 저는 창조론 입장은 달라도 친구들은 여전히 친구로 남아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더군요.
문준호 : 교수님은 오늘 날 한국 청년세대 문제의 핵심을 무엇으로 보시는지요. 매년 정기적으로 한국 일정을 소화하고 계시고, 또 오랜 기간 해외에 계셨기에 오히려 더 객관적 조망이 가능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양승훈 :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소명의식입니다. 많은 분들이 인생이 짧다고 얘기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데는 인생이 그렇게 짧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청년의 때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인생은 깁니다. 둘째는 역사의식입니다. 개인과 교회의 역사, 나라와 민족의 역사, 나아가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주변의 현상들을 역사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그 변화와 자신의 주체적 관계를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최근 한국사회가 양극화되어서 세대 간의 극단적인 대치를 하고 있는 것은 역사교육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준호 : 이제 교수님의 전문영역인 과학 관련 이야기를 잠시 듣고 싶습니다. 과학과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일까요?
양승훈 :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과학을 주신 것이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첫째,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청지기적 소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과학으로 창조세계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둘째, 과학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학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에게 가난과 기아, 질병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은 이웃 사랑이라는 중요한 소명을 감당하는 것이지요. 셋째, 과학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인간이 누구인가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발달은 우리에게 이전에 알지 못했던, 일상적 삶 속에서는 물론 먼 우주나 극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조차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줍니다.
때문에 과학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과학으로 인해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과 풍요로움은 하나님의 축복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의 높아진 위상을 이용하여, 과학으로 위장한 이데올로기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도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주의나 자연주의는 과학이 아닙니다. 단지 과학에 대한, 또는 자연에 대한 이데올로기이고, 이데올로기는 곧 우상입니다. 한 예로 우리는 진화론과 관련하여 그것을 과학적 측면에서 검토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기생하는 자연주의나 무신론 등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경계해야 합니다.
문준호 : 복음주의 안에는 교리적 확신을 공유하면서도, 과학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 청년들이 상당한 혼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관련해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양승훈 : 아마도 최근 복음주의 진영에서 과학과 관련해서 가장 극명하게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기원논쟁’일 겁니다. 그리고 그 논쟁 한 가운데 저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각자 입장을 갖고 있지만, 설혹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젊은 지구론자들이 많은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오랜 지구론을 주장하면 곧 바로 진화론자로 매도하고, 또 진화론자는 무신론자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오랜 지구론을 주장하면서도 진화론자가 아닌 사람이 많고, 진화론자들 중에도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원 논쟁과 관련, 제가 늘 마음에 두는 말씀은 에베소서 4장 15절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speaking the truth in love)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바울은 진리를 사랑 안에서 말하라고 권면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사랑이 없거든 진리를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계는 사랑이 없으면서 진리만 말하는 사람들로 인해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싸움판이 되고 있습니다. 기억할 것은 우리가 틀린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서 지옥 가지는 않지만 형제를 미워하면 지옥 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입니다!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되는 상황을 보면서, 저는 청년들에게 최소한의 건강한 복음주의적 신학 훈련을 받기를 권합니다. 모두 신학교를 가거나 신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적어도 어떤 주장의 신학적 오리엔테이션을 분별할 수 있는 정도의 신학적 교양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형편이 되면 VIEW와 같은 데서 공부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있는 곳에서 성경해석학이나 조직신학 분야의 강의를 한두 개 들으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문준호 :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기독교세계관 공부와 운동에 참여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양승훈 : 기독교 세계관 공부와 운동은 그 자체를 전공으로, 또는 생업으로 삼는 몇몇 분들을 제외하면 교양이자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오늘날 몇몇 분들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된 것은 이 운동이 지나치게 사변화, 학문화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한국에서의 세계관 운동은 처음부터 대학원 학생들이나 젊은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된 운동입니다. 때문에 학문화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세계관 운동은 실천운동이라고 믿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훈련하는 것이지요. 물론 기독교 세계관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저절로 온전한 기독교 세계관적 삶을 산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차피 계속 ‘공사 중’이니까요. 다만 우리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를 위한 토대로서 조금은 더 이론적 체계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적 삶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준호 : 우리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세계관 운동에 동참함에 있어서, 여전히 무엇을 가치 있게 붙들며, 앞으로 특별히 무엇에 유념해야 할까요?
양승훈 :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세계관 학자 헤슬람(Peter Heslam)의 지적처럼 근대 교회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운동은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도 그러합니다. 세계관 운동이 갖는 약점과 유익 혹은 강점은 이미 충분히 드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기독교세계관 운동의 약점을 조심하면서 공부와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속(巫俗)이라는 기층신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기복신앙, 번영신학,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횡횡하는 한국교회에서 세계관 운동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에게 말과 글, 삶을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독 지성인들은 전공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바른 세계관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준호 : 마지막으로 현재 한국 그리스도인 청년들에게, 앞 세대로서 꼭 권면하고 싶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양승훈 : 최근 몇몇 청년들로부터 나라의 미래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절망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지나치게 비관적 태도를 갖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정치 지도자 한 번 잘못 뽑았다고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믿음의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성실하게 하되 지나치게 비관적이 되지 말았으면 합니다. 고쳐야 할 바가 있다면 고치면서, 참여해야 할 운동이 있으면 참여하면서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래 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으로 격려하고 싶습니다.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렘29:6). 오늘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2600년 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보다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3포 세대, 7포 세대 등의 자조적인 표현을 버리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밝은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이 꿈을 꾸는 것을 격려하는 세계관 운동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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