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사도행전 2장 17절에서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요엘서를 인용하여 성령님이 임하셨음을 선포하고 있다. 왜 성령이 오시면 청년들은 환상을 보는 것일까? 청년이 본다는 환상은 무엇일까?
우선 ‘예언’은 프로페튜오(προφητευω)로 ‘예언적인 계시를 하거나 예언을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꿈은 에뉘프니온(ἐνύπνιον)으로 ‘꿈이나 잠에서 나타나는 환상’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환상은 호라시스(ορασις)로 ‘시각(봄), 출현, 환상’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에서는 종종 비전으로 번역된다. 에뉘프니온(ἐνύπνιον)이 자는 동안 보는 환상이라면 호라시스(ορασις)는 깨어있는 동안 보는 환상을 말한다.
원어의 의미를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청년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깨어서 하나님의 환상을 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깨어서 환상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환상은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을 지칭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청년이 지금 여기에서 환상을 본다는 것, 깨어서 본다는 것은 현실적 삶의 기초가 배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상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환상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을 도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사역을 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내 비전이 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비전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이는 것을 보여주셨다. 나는 이 비전이 뜻하는 바를 현실적으로 알지 못했고, 부모님의 사역과 연결이 된다는 생각 해 본적도 없었다. 내 비전은 내 현실과 분리된 환상으로 존재했으며, 내심 해외를 돌아다니는 멋진 삶이 나를 기다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대학교에 진학 한 후 지병이었던 아토피가 심해지면서 오히려 내가 준비하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다. 주변에서도 나를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때 그 비전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추상적으로 주님이 주신 비전을 생각할 수 없었고, 주변의 현실을 돌아보면서 비전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기 시작했다. 주님께서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시도해나갔다. 부모님의 사역을 도우면서 신학을 공부했고,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만났고, 다문화 교육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늘 재정적인 어려움이 존재하는 부모님의 사역을 도우면서 공부를 해 나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장학금을 신청하고, 잠을 줄이며, 매일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힘든 시간 동안에도 다문화 친구들과 재정, 학업, 건강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위로했다. 다문화 이주 가정과 아이의 성장을 함께 고민하면서 아이의 양육과 같은 각 가정의 구체적 고민들을 함께 나누어지며, 정말 다양하고 매우 현실적인 삶들의 이야기를 현실 속에서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나의 현실적 삶은 자연스럽게 주님이 주신 비전으로 연결되었다.
나의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드러난 현실적인 환상에 대한 깨달음은 다음 두 가지 말씀에 나온다. 하나는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복음 14장 28절에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라는 말씀이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대로라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또 선진들이 감당한 믿음은 그들의 삶 속에 바라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실제 이루어짐을 증거하고 있다. 이때 바라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바로 환상이다. 누가복음 14장의 말씀에 따르면 제자들은 이 바라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가족과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며, 망대를 준공하기 위해 계산해야 한다. 전쟁에서 이길 것 같지 않으면 미리 화친을 청해야 하며,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 하여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적인 환상이란 믿음이며, 믿음을 가지고 제자의 삶을 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십자가를 매일 지고 가는 길에서, 망대를 준공하기 위해 현실적인 계산조차 철저히 수고를 아끼지 않되, 주의 영이 임하시면 그 영으로 말미암아 내 청년의 때에 놀라운 많은 실상들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청년들이여, 이렇게 다시 한 번 함께 선포해 보자.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환상을 바라보고, 그 환상을 이루기 위해 치열한 제자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주어진 모든 현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끝까지 바라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주님의 영이 주시는 바로 이 놀라운 축복을 풍성히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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