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일전에 어느 작가 지망생으로부터 상담을 요청받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미술대학원에서 미술을 배우는 일이 신앙과 상충할 때가 많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어릴 적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양육 받은 그는 낯선 교육환경에서의 적응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신앙을 지닌 작가 지망생이 세속적 가치와 담론이 난무하는 대학에서 겪는 고민의 하나이다. 필자도 대학 시절에 그런 딜레마로 휘청거렸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는데 먼저 주위에 여러 크리스천 미술단체가 있으니 가입하여 동료, 선배들에게서 조언을 얻는 것이 좋다고 말해주었다.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멘토를 만나든가 경험이 풍부한 분의 조언을 듣는 것이 시급해 보였다. 이와 함께 그 자신이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지 대응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간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하듯이, 예술도 그 태생과 성격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 지망생에게 프란시스 쉐퍼(F. Schaeffer)의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로크마커(H. Rookmaaker)의 <현대예술과 문화의 죽음>, 그리고 낸시 피어시(Nancy Pearcy)의 <세이빙 다 빈치> 등 몇 권의 책을 추천해주었다. 그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학에서 그가 치를 고충과 싸움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종종 학생들에게 “네 느낌대로 그려라”, “개성을 표현하라”고 주문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이 말은 개인의 표현적 자유를 권장해주는 것 같지만 실은 토대를 잃어버린 가치관을 반영해준다. 토대와 좌표를 잃어버리고 감정에 우선권을 부여해주는 상황이 되었으니 예술은 개인주의와 개인의 기분에 맡겨진다. 그런데도 순수예술에 대해 “고차원의 진실을 드러내거나 영혼을 치유하는 초월적인 정신적 역할”(Larry E. Shinner)을 기대하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현실에서도 오히려 이와 상반된 현상이 목격된다. 대학에서 유독 배제되어야할 것은 종교적 신념이 담긴 그림이다. 물론 관대하게 보아주는 교수도 있지만 누가 신앙을 담은 도상을 그리기라도 하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처럼 눈총을 받는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 교수는 현대미술에서 종교는 기이한 장소에 위치해 있다고 정확히 지적했다. 기준과 가치관이 확실한 그림은 있어선 안되고 느낌과 개성은 존중되는 아이러닉한 상황이 빚어진다. 객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는 관념이 공격대상이 되는 셈이다. 진리의 기초를 상실한 시대에는 진리 자체를 거부하고 ‘내키는 대로’ 살기를 원한다. 월요일에는 참이었으나 토요일에는 거짓으로 판명날 것에 의탁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스런 일이다.
한스 로크마커는 예술의 문제를 단순히 미적 문제나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싸움으로 인식하였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후 10;3-4). 그는 현대 예술이 비도덕적이고 중립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인간성을 공격하는 등 꾸준히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고,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잠을 깨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먼 훗날에야 있을 법한 공상적인 이야기이기보다는, 우리가 자녀를 키우고 지도자를 선출하거나 지구 환경을 돌보는 문제만큼이나 실천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학문과 예술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반란자들이 주도권을 장악했는데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기며 초연한 태도를 취한다면 상황은 날로 나빠질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고 주장하면서도 그 원칙 위에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많은 영역을 세속주의에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가 현대 문화로부터 후퇴해서 얻은 것은 ‘창문 없는 세계’(Peter L. Berger), 즉 초자연적 영역이 제거된 고립화였다. 이 고립화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창조질서를 준수하기보다는 무화시키는 ‘영적 근시’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나라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과 거짓의 테스트를 통과한 것은 유일하게 성경의 절대적인 진리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범람하는 세속주의 물결 가운데 기독 청년들이 기독교 세계관의 안경을 쓰고 문화와 예술에 참여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사항이다. 세속주의에 등을 돌리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스터디하여 반박할 줄 알며, 놓치고 있는 부분을 기독교의 체계 안에서 찾아 제시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창조세계의 청지기로 위대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문화예술에 참여하되 기존질서를 비호하는 입장에 서기보다는 죄악과 불의는 멀리하되 옳은 것, 정의, 사랑, 미,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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