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언뜻 전형적인 경건 서적류에 속할 이 책은 제목부터 상당히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원제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복음>(Unbelievable Gospel)이다. 세상에! 복음이 우리의 존재 이유이자 희망인데, 그 복음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말인가? 이 불편함은 머리말에서도 “거리낌이 되어버린 전도”나 “복음과 사회 사이의 엄청난 간극” 등의 냉정한 진단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우리가 물려받은 전도방식과 현재 우리의 문화를 반성하면서 오늘날 사람들이 왜 전도라는 말을 혐오하는지, 왜 복음이 들을만한 소식이 못되는지를 살펴보겠다고 한다.
이 책은 세 단원으로 전개된다. 1부에서 저자는 “전도는 왜 어려워졌나?”를 다루며, 우리에게 익숙한 관행적 전도의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전도의 비인격성, 설교조 방식, 다원주의라는 불리한 환경, 신자들의 무지로 인한 전도에 대한 불확신 등이다.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전도에 대한 필요 충분한 진단이다. 저자는 2부에서 “무엇을 전해야 할까?”라는 주제를 다룬다. 그는 복음의 성격을 역사적, 개인적, 우주적이라고 정의한다. 역사적 복음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에 근거하며 이것이 믿음의 교리로 전수되었음을 의미한다. 개인적 복음은 한 인격의 근본적 변화를, 우주적 복음은 복음의 공적,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균형을 위한 표현이다. 저자는 선교적 교회의 실천을 위한 교재도 집필하였는데, 다른 선교적 교회론들이 주로 하나님의 선교에서 출발하는 반면 그의 교재는 복음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차별이 있었다. 나는 그의 이러한 접근이 복음주의 성향의 교회들을 선교적 교회에 헌신하게 하는데 있어서 실제적일 뿐 아니라 안전하고 견고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1부가 전도에 대한 반성적, 개혁적 문제 제기를 했다면, 2부는 복음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도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오늘날 사회적, 문화적 상황의 변화로 인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그래서 믿음직스럽게 들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저자에 의하면, 복음이 믿을만한 이야기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복음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 상황에서의 복음을 소통하는 방식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지 못할 복음을 나누고 있다는 것은 무덤의 돌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놔둔 채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158쪽) 복음을 어떻게 들리도록, 믿을만한 가치가 있게 소통할 것인가? 누구나 지적하지만, 구체적인 각론을 논하자면 쉽지 않은 문제이다. 따라서 이 책의 진가는 바로 3부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에서 빛을 발한다.
저자는 복음의 메타포라는 표현을 통해서 오늘날 사람들의 여러 상황에서 복음이 변주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복음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칭의, 새 창조,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량, 양자됨이라는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각 주제자 현대인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칭의는 오늘날 자신을 도덕적으로 용납 받고 증명하려는 이들에게 연결될 수 있는 교리다. 새창조의 교리는 중독 등의 실패와 상처로 망가진 인생에게 소망을 줄 수 있다. 오늘날 관계의 어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낮은 자존감 속에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기독교를 편협하다고 비난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복음의 메타포는 속량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구원과 용서는 다른 이들에게 환대와 관용을 베푸는 가장 견고한 기초가 된다. 인정에 목마른 사람들에게는 양자됨의 교리가 중요하다. 구원은 우리의 존재와 자격이 하나님 안에서 회복됨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러한 작업은 기독교의 복음과 현대인의 삶을 잇는 좋은 예시라 할 수 있다. 그는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과 질문에 관심을 가지라고 요청하며, 이는 신학적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필요한 문제라고 한다.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선교사상가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그의 기념비적 저서인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IVP, 2010)에서 ‘복음의 해석자로서의 회중’(Congregation as Hermeneutic of the Gospel)이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 교회의 삶이 복음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통로이다.
복음이라는 단어는 너무 멋지다. 그 단어의 울림만으로도 내 인생 전체를 걸고, 세상에 담대히 증언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허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사람들에게 그 복음이 믿을만하고 매력적으로 들리는지를 숙고하면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물론 인간이 이성의 한계 안에서 회개와 믿음의 복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내주하시는 역사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겸손과 사랑으로 믿을만하게 들려져야 할 복음의 이야기가, 우리의 아집과 오만으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치부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의 제목은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덮으면 반성과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복음의 깊고도 넓은 능력을 재발견하는 희망을 찾게 만든다. 그래서 믿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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