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요즘 아이들은 사치를 좋아하고 버릇이 나쁘며,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다. 어른들을 존경하지 않고 운동 대신 재잘거리기를 좋아한다.” 주전 5세기에 살았던 소크라테스가 당시의 철부지들을 두고 토로한 불만이다. 모든 시대의 꼰대들을 대변한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와 살날이 조금밖에 남지 않은 노인, 경험을 많이 한 어른과 조금밖에 하지 못한 풋내기, 호랑이 담배 피울 때 살았던 백발과 5G 휴대전화기로 외국 축구경기를 보는 철부지가 생각이 같을 수 없다. 세대 간 격차는 어느 시대에도 있었고 소통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로부터 20세기 초까지는 ‘객관적’, ‘정상적’, ‘상식적’, ‘대세’ 같은 것들이 있었고 대부분 존중되었다. 젊은이들은 아직 어려서 사실도, 진리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른들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한다고 인식되었다. 기성세대는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고 어린 것들은 무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유유서(長幼有序)는 그저 하나의 예의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합리적인 질서였다. 어른이 큰 소리를 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현대인의 삶은 주로 기술에 의하여 결정되는데 그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구세대는 아무리 헐떡거려도 따라갈 수가 없게 되었다. 특히 요즘의 기술은 육체의 편리보다는 의식의 확장을 돕기 때문에 사고방식, 세대간 가치관의 차이를 더욱 확대한다. 교통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세계를 하나로 묶고 거기다가 번역기술까지 개발되어 이제는 문화나 지역 간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서로 비슷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IT 기술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젊은 세대에게 더 두드러지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한국의 BTS가 국제적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청소년들의 노래를 한국의 어른들보다 미국이나 유럽의 청소년들이 더 좋아하는 것이다. 이제는 같은 지역, 같은 문화권에서 드러나는 세대 간의 차이가 다른 문명이나 지역 간의 차이보다 더 커지고 있고, 모든 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더 큰 소리를 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의견차이가 있을 수 없다. 물이 H2O고 0도에서 언다는 것에 대해서는 노인이나 어린이가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과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객관적’ 사실이나 진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사실과 인식의 일치가 진리라는 ‘부합설’(符合說, Correspondence Theory)은 힘을 잃고, 인식간의 일관성이 진리라는 ‘정합설’(整合說, Consistence Theory), 심지어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이 진리라는 ‘합의설’(合意說, Consensus Theory)까지 제시되는 상황이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은 심지어 자연과학 이론조차도 패러다임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상대주의, 다원주의가 당연한 것으로 수용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이 시대의 정신을 대변한다.
거기다가 점점 확대되는 SNS에는 워낙 많고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므로 어떤 어불성설 주장도 동조를 받을 수 있고 따라서 정당화되고 강화될 수 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정보와 다양한 의견이 넘쳐흐른 때가 없었지만, 동시에 오직 자신이나 자기 집단의 관점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려먹었다는 독단이 이렇게 심각한 적도 없었다. 수준 낮은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매우 시끄러운 시대가 되었다. 세대 간 소통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세계관(world-view)이란 객관적 세계(world)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관점’(view)에 초점이 있고, 기독교적 세계관이란 세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관심은 현대 사회의 다원주의적 조류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도이어베르트(H. Dooyeweerd)가 고대, 중세, 현대의 ‘종교적 기본 동인’(religious ground motive)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한 것은 다양한 세계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적 세계관은 각자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합의해서 형성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면 마땅히 믿고 순종해야 할 성경에 근거해 있다. 객관적인 권위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다른 세계관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성세대에 속했든 청년세대와 소년세대에 속했든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가져야 할 관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세대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는 자신이 속한 세대의 관점을 기독교적 세계관보다 우위에 두기 때문이다. 요즘 그리스도인들 간에 정치적 견해로 다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이념을 신앙보다 우위에 두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노인이든 젊은이든 성경과 2000년의 교회 역사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기본적인 소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각 세대가 성경의 가르침과 그 성경을 해석해서 형성한 정통교리와 자신들의 관점 간에 해석학적 순환이 일어나도록 마음을 열고 노력하면 상대주의를 넘어 선 기독교 세계관에 동의할 수 있고, 그것은 세대 간 소통의 접촉점(poin of contact)으로 부족함이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그리스도인의 세대 간 소통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4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