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작년 가을에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드라마가 방송되었다.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10대, 20대 젊은 시청자 사이에선 큰 인기와 화제였다. 사실 방송가에서는 이 드라마가 왜 그런 뜨거운 반응을 얻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웹툰 원작의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만화 속 세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판타지 강한 스토리를 가졌고, 개연성을 중시하는 기존 드라마 문법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는 낯선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방송 전문가에게도 젊은 세대만의 이 독특한 반응을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는 건 방송가만의 숙제는 아닌 듯하다. ‘밀레니얼 세대’, ‘Z세대’, ‘90년대생’ 등 현란한 말을 동원해 그들의 특징을 분석하고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즐비하다. 선거를 앞두고 표심에 목매는 정치권에서도 20대 유권자는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마음을 사는 건 더 어려운 집단으로 언제나 거론된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교회는 어떤가? 젊은 세대를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기는 어려울 거다. 지역 교회에 청년의 자리가 비어간다는 하소연이 나온 지는 이미 오래고, 대학캠퍼스 사역을 담당하는 선교단체들은 과거 부흥 이야기가 이젠 전설처럼 들린다. 물론 젊은이들이 교회에 전혀 없진 않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려면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 청년 사역에 성공한 교회에 가야만 한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함께 호흡하고 같이 예배드리는 교회는 점점 더 찾기 어렵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온 나라의 비난을 받은 신천지는 한국 교회에 또 다른 의미의 충격을 주었다. 확산 초기 전체 확진자 중 20대 비율을 왜곡시킬 만큼, 신천지 신자 가운데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 드러났다.‘청년을 찾기 어려운 정통 개신교’와 ‘20대가 넘쳐나는 이단’이라는 객관적 사실이 적잖이 당황스럽다.
한국 교회는 젊은 세대와의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여러 정황을 보면 ‘단절’이라는 표현이 과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청년세대와의 단절을 극복하고 제대로 된 소통을 위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쉽게 답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에서 힌트를 찾아볼 수는 있겠다.
내가 ‘미디어와 종교’를 공부한다는 걸 알고 미디어를 전공하는 그리스도인 학생들이 찾아와 상담을 청하곤 한다. 전공의 성격 때문인지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고, 사회적 이슈에 여러 방식으로 참여하려는 그들의 고민거리를 듣다 보면, 반복되는 말이 있다. 교회는 “질문하지 못하는 곳”이란다. 학교나 세상과 다르게 교회는 질문할 수 없는, 아니 질문해서는 안 되는 곳이란다. 목회자와 교회 어른들은 질문을 막는, 아니 질문하지 못하도록 가르치는 사람들이란다.
청년 사역으로 제법 이름난 한 대형교회 청년부 수련회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일체의 토론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토해내는 강사 앞에서 청년들이 하나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갔고, 거기에는 리더급의 청년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질문하지 못하게 하는 교회를 더는 견디지 못해 떠나가는 이 땅의 젊은 세대를 상징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세대(generation)의 구분은 규범과 상식의 차이를 전제로 한다. 각 세대는 나이로만 묶이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집단경험에서 오는 고유의 감각, 정서, 나아가 상식과 규범의 공유를 통해 형성된다. 세대 차이란 결국 그 간극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차이에 대한 질문을 허용하지 않고, 그 차이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인정하지 못하면 세대 간 소통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질문하지 못하는 교회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을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세대 차이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교회와 교회 어른들에게 ‘절대성과 상대성의 분별’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제대로 구분하라는 것이다. 절대적 신앙의 대상이 되어야 할 ‘진리’와, 상대적 포용의 대상이 되어야 할 ‘지식’, ‘태도’, ‘규칙’, ‘방법’ 등을 혼동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진리의 절대성을 부인하지 않되, 그 진리를 이 땅의 현실에서 해석하고 실천하는 방법론의 비절대성을 인정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호소다.
질문하지 못하게 하는 교회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염증은 정치, 사회, 이념이라는 상대성의 영역을 복음이라는 절대성의 영역으로 몰아가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또, 시시각각 벌어지는 쟁점을 놓고 벌여야 할 질문과 토론을 설교와 호통으로 치환하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질책이다. 진리의 절대성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절대 쉽지 않은 숙제다. 그러나 청년세대와의 단절을 극복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신앙인들은 이를 가벼이 여길 수 없다. 나아가 복음주의 신앙의 본래 정신을 회복하고 세상, 이웃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상황에 내몰린 한국 교회가 외면해서는 안 될 과제이다.
지금 청년세대에게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어떻게 보일까? 최근 몇 년 동안 공동체를 힘겹게 했던 <월드뷰> 논란으로 많은 청년이 실망하고 떠난 건 아프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 사태의 본질 역시 질문하지 못하게 했던, 상대성과 절대성의 경계를 흔들었던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비로소 청년세대와 함께하는 사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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