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최근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일상이 지속되며 우리 가족은 얼마 전 폰을 바꾸게 된 딸아이와 함께 재미 삼아 인공지능(AI)과의 대화 놀이를 하게 되었다.“시리! 빅스비를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자, 시리는“그것은 마치 사과와 사과가 아닌 것을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했는데, 미국인들이 할법한 유머를 감정 하나 섞지 않고 또박또박한 기계음이 얘기하는 것이 우리의 폭소를 자아냈다. 뒤이어 아들은 자기의 폰에 대고 “빅스비! 시리를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자 빅스비는 “저도 인공지능 대 인공지능의 대결을 한번 해보고 싶군요”라고 사믓 다른 대답을 하였다. 이 인간 아닌 것들의 대답에 재미가 붙어 “오케이 구글! 시리와 빅스비를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자 “시리는 같은 고향 친구라 좋고, 빅스비는 같은 업계 친구라 좋아요”라고 하였다. 현재의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 수준을 구현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반복 학습 데이터에 의해 딥러닝을 하고 있는 인공지능조차 그 의사소통 양식에 있어서 태생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잠시나마 아이가 제법 어른같이 말하는 듯한 AI 반응이 재밌어 응대를 해주며 든 생각은 우리가 누군가의 대상(object)이 되어줌으로 그 누군가가 점차 우리를 닮아간다는 점이었다. AI가 인간을 닮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녀가 부모를 닮게 되어있고,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닮았고, 하나님을 필두로 대상을 통해 배우고 양육되며 그 대상이 내면화되어 응집력있는 자기(Self)를 이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은 바로 가장 중요한 성장의 그릇인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자가 격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해진 요즘 한산한 거리와는 달리 자녀들이 있는 가족들은 가족 간의 너무 가까워진 거리 탓에 꼼짝없이 삼시세끼를 해먹으며 부대껴야 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함께 있어 좋은 시간을 잘 보낸 가족들도 있겠지만 서로 맘에 들지 않아도 밖에 나갈 수 없으니 방문을 닫아버리는 불편한 동거를 하기도 하고, 가족 간 대화가 불편하여 제각각 주로 TV와 폰, 그리고 컴퓨터와 보내며 단절을 또렷이 느꼈을 수도 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얘기를 한번 해보자 하여 얘기를 시작해도 서로 차이점만 확인하게 될 뿐 더 이상의 진전 없이 좌절감만 경험했을 수도 있다. 이 글을 읽게 될 때에는 조금이나마 사태가 진정되고 희망이 보이길 기대해보지만 적어도 지금은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고 가꿀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잠언 27장 17절에 보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연이어 19절에는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이 두 구절은 인간의 성장과 관계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친구가 얼굴을 빛나게 한다는 말씀은 인간은 서로의 생각의 다름에 대해 정서적으로는 불편감을 느끼더라도, 비평적 대화를 통해 치밀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습득하게 됨을 의미하다. 사춘기 이후의 자녀들과는 이러한 비판적 대화를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19절 말씀은 더 본질적 수준에서 인간은 자기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이의 마음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음을 알려면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이것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양육자가 해주는 일로서 삶에서 지속적으로 이러한 관계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반영’(reflection)해주며 경청해주는 것이 인간의 발달과 성장에는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결국, 나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고 받아주는 한쪽 측면과 나와 다른 점들로 인해 갈등하고 긴장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독특성을 차별화시키는 과정이 균형을 이루면서, 우리는 ‘나’라는 독특한 존재로 지어져 가게 되는 것이다.
의사소통 이론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화가 없거나 갈등하던 그룹이 소통을 해보자고 대화를 시작하면 일정 기간은 차이점을 발견하고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는 그래프를 그리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지속해나가면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U 선형의 그래프로 바뀌면서 타협점과 해결점으로 향하게 된다고 한다. 어쩌면 거기에 이르기까지 대화하지 않았기에 대화의 힘을 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소통을 위해서는 때로는 잘 받아주는 거울 같은 대화와 때로는 다름을 확인하며 갈등을 드러내는 두 종류의 대화가 모두 유익한 것이다. 그 선제조건은 안전한 상태에서 이러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관계가 바로 끊어지지 않는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면서 성화되는 과정을 걷도록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관계의 궁극적 모델이다. 그러한 관계가 실현될 수 있는 장이 가족이며 가족 안에서의 이러한 두 축의 관계와 소통의 경험야말로 우리의 내면세계를 더욱 강건하고 균형있게 만들 수 있다. 즉, 서로 자기를 볼 수 있게 거울이 되어주기도 하고 더욱 건강한 자극 속에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여 빛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가족 간에 그러한 대화가 가능한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4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