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자녀들이 성장할수록 부모로서 점점 힘든 부분이 바로 소통 문제가 아닐까? 중2 자녀를 둔 한 부모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말도 잘 듣고 대화도 자주 했는데, 중학교를 올라가자마자 아이가 완전히 변했어요. 아이와 대화만 하면 결국에는 싸우게 돼요.”라고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엄마는 자기 자녀와 매일 2시간 이상 대화를 한다고 해서 큰 도전을 받았다. 그 후 그 엄마의 아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 엄마가 대단하신 분이라고 하니 그 아이가 하는 말이 “헐, 엄마만 계속 이야기해요.”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웃고 넘길 수 없는 것은 많은 부모가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에게 더 다가가고 싶고, 자녀들이 더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화의 문을 열지만, 그럴수록 서로 마음의 문이 닫혀 간다. 아이들이 점점 커서 사춘기가 되고 청년들이 되어 갈수록 소통이 아니라 불통의 장벽이 높아지고, 서로의 마음은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왜 부모는 자녀들과 소통하는 것이 힘들까? 부모가 자녀와의 소통이 힘든 이유를 두 가지로 간략히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는 부모와 자녀의 생각 차이 때문이다. 아이들이 클수록 점점 부모와의 관심사가 달라지고, 더 나아가 가치관과 세계관이 달라지기도 한다. 부모는 자녀들의 말과 행동 속에서 자기 생각과 다르거나, 심지어 부모가 보기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가치관 또는 세계관을 발견한다. 그래서 자녀들을 향한 걱정과 올바르게 양육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시도하지만, 본의 아니게 대화가 아닌 잔소리가 된다. 결국에는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다툼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부모가 대화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강의도 듣고 책도 읽지만, 자녀와의 소통은 여전히 힘들다. 한 코칭 강사의 말이 기억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못하는 것이 대화이다.” 어린아이가 책이 아닌 부모의 말을 지속해서 들으며 자연스럽게 말을 익히듯이, 대화는 책과 강의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대화 모델과 수많은 실습으로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부모는 지금까지 모범이 되는 대화를 경험하거나 대화 훈련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면 어떻게 자녀와의 소통을 회복할 수 있을까? 먼저 자녀와의 대화를 회복하기 위해 부모 자신의 대화 방식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대화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것이다. 부모의 대화 목적이 자녀들의 생각과 행동을 판단하는 것이라면 그 대화는 부모의 ‘일방적인 소통’(잔소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모의 대화 목적이 이해하는 것이라면, 부모는 대화를 통해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자녀와의 대화는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어떠한지를 이해해주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공감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자녀들은 부모들로부터 이해받는 느낌이 들게 되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되고, 부모에게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우리를 판단하기보다 누구보다도 이해해주시는 하나님처럼, 부모도 자녀들을 판단하기보다 이해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해한다는 것은 잘못한 것을 내버려 두거나 무조건 용납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지금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고, 더 나아지기를 소망하며 기다려 주는 것이다. 사람은 판단 받거나 정죄 받을 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이해받을 때 비로소 변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화를 해야 자녀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안하는 해결 방안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이다. 대화를 통해 자녀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첫 단계는 다름 아닌 경청하기이다. 하지만 대부분 부모는 지금까지 말하기와 화내기를 먼저 하고 듣기는 그 후에 하거나 심지어 듣기는 아예 생략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지금까지 익숙해진 것을 버리는 것 외에 다른 해결 방법이 없다. 대신에 부모는 자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더욱 부모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자녀들과 대화할 때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모가 자녀에게 경청할 수 있도록 두 개의 귀, 두 개의 눈, 두 개의 콧구멍, 온몸에 퍼져 있는 수천수만의 신경세포, 이 모든 감각 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는 뛰어난 두뇌를 이미 주셨다. 또한, 하나님은 자녀를 위해 무엇이든지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랑을 부모에게 이미 부어 주셨다. 더 나아가 자녀들이 이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영향을 받기보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부모는 자녀와의 소통을 포기할 수 없다. 자녀들이 부모와 소통하지 않는다면 자녀들은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게 될 것이고, 소통할수록 그 누군가와 친밀해질 것이고, 그 ‘소통의 대상’(세계관)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이제 부모는 경청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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