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생계를 위해, 그리고 자녀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해 부모님은 아침부터 밤이 늦도록 일을 하느라 고단한 하루를 보내셨다. 부모님을 대신하여 할머니는 언니와 나를 돌보며 빈자리를 채워주셨다. 어렸을 때 나는 꼬마 선생님이 되어 글자를 모르던 할머니에게 간단한 숫자와 글자를 가르쳐주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글을 읽을 수 없었던 할머니를 위해 구역예배를 드릴 때 할머니의 옆에서 성경과 찬송가를 대신 찾아 펴 드리며, 할머니와 나는 세대를 뛰어넘어 가까운 친구처럼 지냈다. ‘세대 소통’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니, 이제는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하고 계신 할머니와 함께 보낸 유년시절이 떠올랐다.
2001년에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하면서, 운이 좋게도 캠퍼스에서 마음이 고운 동기들과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한 학번에 열다섯 명 남짓한 소수가 모인 전공이었기에 우리는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깊이 알아갈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믿음을 가진 신실한 동기들과 선배들의 사랑 덕분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과방에서, 자취방에서, 선교단체 동아리방에서, 자신의 시간을 내어 성경과 찬양을 알려주고, 정성스럽게 쓴 편지와 신앙서적을 선물하며 믿음이 연약한 나를 하나님께로 한걸음씩 인도해주었다. 도전적인 질문들을 하며 하나님과 기독교 신앙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나의 거친 마음을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감싸주고 녹여주었던 캠퍼스 예배자들로 인해, 나는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대화하며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갈 수 있었다. 할머니의 신앙을 곁에서 보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었던 나는 대학에 들어와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거두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날 수 있었다.
2009년에 가장 가까운 대화 친구로 지냈던 동기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는 남들보다 조금은 이른 나이에 중간세대 엄마로서 자녀와 소통하는 법을 배워갔다. 아이가 한창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나는 호기심 많은 아이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느라 밤이 되면 목이 잠기고 녹초가 되곤 했다. 석사과정을 중단하고 아이를 전담하여 양육하는 것이 매우 고되고 힘든 일이었지만, ‘할아버지’를 ‘아아고지’라고 발음하며 가족들의 호칭을 배워가던 아이의 모습이 기특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비록 서툴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도 자녀된 우리에게 사랑으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체험적으로 깨달아갔다. 이제는 11살이 되어 몸도 마음도 훌쩍 큰 아이가 나의 옆에서 재잘거릴 때마다, 끊임없이 세상을 배워가며 소통하는 아이의 모습이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할머니의 살결을 느끼며 소통했던 유년시절, 캠퍼스에서 동기들과 선배들을 통해 하나님과의 소통을 배워갔던 학생시절, 엄마가 되어 어린 자녀의 몸짓과 소리에 반응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육아의 경험을 통과하면서, 어느새 나의 삶에서는 하나님과 타인과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석사과정에서는 ‘치유적 대화’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고, 박사과정에서는 학교 밖의 청소년 활동가들과 소통하는 데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이제는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는 것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나에게 세대 소통은 어려운 주제로 남아있다. 우리에게 세대를 넘어 소통할 수 없는 어려움이 존재한다면, 그로 인해 때로는 관계의 상처와 고통을 경험한다면, 소통을 가로막는 벽은 무엇일지 살펴보고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들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 20년간 살아온 캠퍼스 생활을 돌아볼 때, 2020년 현재 나는 캠퍼스가 비교의식과 경쟁으로 병들어가며,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들이 드물어졌다고 느낀다. 하지만 어려운 캠퍼스 상황에도 불구하고, 후배 예배자들을 만나며 느끼게 된 것은, 청년들의 마음에는 아직 조건 없는 사랑과 소통을 원하는 순수한 갈망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세대가 변해감에 따라 예전과는 다른 소통의 방식과 형식을 필요로 하겠지만, ‘소통의 갈망’이라는 본질은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영혼의 배고픔으로 존재하고 있다. 나는 캠퍼스에서 청년 예배자들과 친구처럼 함께 예배하고 공부하면서, 춥게만 느껴지는 이 곳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따뜻한 만남들을 이어올 수 있었다. 하나님 안에서 삶의 고난과 굴곡을 인내함으로 통과하고 있는 신실한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마음에 깊은 위로를 얻고 캠퍼스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후배들을 위로하며 격려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나는 도리어 그들의 삶을 통해 더 깊은 위로와 격려를 받을 때가 많다. 세대를 넘어 소통하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도의 교제와 교통에 의지하여, 나이의 옷, 권위의 옷, 판단의 옷을 잠시 벗어두고 한 사람의 예배자로서 상대방을 존중하며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이 내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체험한 깊은 사랑이었으며, 하나님과 이웃과의 소통을 열어준 소중한 통로였음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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