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결혼식 날, 그 축복의 날 피로연 자리에서 아버지는 술 취해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축사한다는 명분으로 또 그 이야기를 꺼내들었지요. 무슨 있지도 않은 ‘빅 피쉬'라니...
그날부터 아버지와는 거의 대화없이 지냈습니다. 중간에서 어머니가 다리를 놔주셔서 그나마 근황은 알고 있지만. 아버지를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평생 여기저기 돌아다니시고, 물론 사업차 그랬겠지요. 어느 날 문득 귀가하면 당신은 손님 같았는데 또 그 지겨운 빅피쉬 속편을 늘어놓았어요.
묻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다정했고 어머니에게는 사랑스런 남편이었을지 몰라도 그것은 연극 아니었던가요. 아버지 마음은 늘 집밖을 맴돌았고, 그저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家長)의 책임과 역할만 잘 했던 남편이자 아버지. 마음과 영혼은 밖을 나돌았기에 집은 아버지에게 어쩌면 감옥 같았는지 모릅니다. 넓은 세상을 훨훨 날고 싶은 새라거나. 강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빅 피쉬를 얘기 했으니, 자유로운 한 마리 물고기가 되고 싶어 했는지도 모릅니다. 낚시꾼들에게 한 번도 걸리지 않은 그 빅 피쉬가 아버지 결혼반지를 꿀꺽했다는 진짜 ‘쌩구라’를 자랑스럽게 얘기 했지요.
또 쓰러져가는 집의 마녀의 유리눈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죽음을 볼 수 있으며, 괴물을 찾아가서 친구가 되었다는, 참 어이없는 이야기. 친구된 거인과는 길가다 숲 속에서 평화의 파라다이스를 만나고, 거기서 열 살 어린 소녀가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로맨스 설정은 정말 유치하기까지 했지요. 한 거인이 서커스단에 취직했는데, 알고 보니 단장이 외로운 늑대였다는 픽션은 어떤 엽기공포스릴러를 흉내냈다고 하는 게 훨씬 설득력 있었을 겁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이제 애비는 심장병이 깊어져서 어쩌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주님 품에 안기게 될 것 같구나. 몇 년 전 너의 결혼식의 축사는 미안하게 되었다. 너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사과하마. 용서해 주겠니? 실은 부모로서 자식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떤 때는 어려울 때가 있단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렇게 선하지도 않고 많은 장애가 어리고 젊은 세대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지.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상은 아름답고, 흥미롭고 신기한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은 한 마리 물고기가 강물에서 헤엄치는 것 같다고 생각해. 이 애비는 인생을 그렇게 비유해본다. 수많은 낚시꾼이 드리운 떡밥에 걸리지 않고 유유히 자기 길을 찾아 가는!
자식들이 부모의 삶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아주 축복된 순간이 온다면 그 때 조금 깨닫게 된다고 할까. 왜냐하면 자녀들이 부모 세대를 이해하는 것은 마치 산 아래에서 정상을 올려다보는 것 같지. 아래에서 거꾸로 올려다 봐야하니 높은 곳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이치아니겠니. 그러니 네가 억지로 애비를 이해할 수 없지. 아버지는 더구나 호기심 많고 남들이 얘기하는 진취적인 성격이었으니 더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겠지. 나의 인생철학이라면 "쉬지 않고 움직이자"였고, 그렇게 역동적으로 살아왔으니 멈추면 실상을 볼 수 없지.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항상 꽁무니를 보게 되는 경우란다. 부모와 자녀 세대의 갈등은 그런 면에서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사랑이 엮어주지 않으면 세대 간의 갈등은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이지. 아버지와 아들 간에 있다는 외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본다. 자녀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부모를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지. 그게 자연(Nature) 아니겠느냐.
나의 빅 피쉬 이야기를 사랑의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애비의 인생관이 그리고 내 아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인생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들어있단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주고자 하는 유언은 이 말이다. ‘인생은 아름답다!’ 한 마리 물고기가 강물에서 유유히 헤엄치며 자기의 길을 가듯..
다시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임종을 앞두시고, “빅 피쉬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었니?” 하고 물으셨지요. 빅피쉬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었네요. 조금 과장되고 극적으로 표현되었을 뿐. 그것은 아버지가 세상을 대했던 고유한 스타일, 아니면 인생관이라 여겨집니다. 아버지 장례식에 모인 이들 속에 마녀, 괴물, 서커스 단장, 샴쌍둥이 자매, 자칭 시인 등등 모두 참석했어요. 그런데 실상 그들은 아련한 추억의 여인이며, 과대 성장한 거인, 장난기 어린 서커스 단장, 어여쁜 중국 미녀 자매, 시인이었지요. 아버지가 빅피쉬였다는 것을. 이제 강물과 같은 주님 품에서 편히 쉬시면서 마음껏 헤엄치시며 지내세요. 제가 그동안 아버지를 이해 못한 걸 용서해 주세요.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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