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존 드래셔 / <내가 다시 아빠가 된다면> / 홍병룡 옮김 / 아바서원 / 2018
COVID-19로 표기되는 바이러스가 가져온 변화는 놀라울 뿐이다. 이 새로운 질병의 전파 속도를 늦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시행되고 있다. 3월이면 개학하던 학교는 계속해서 개학을 미루다 마침내 ‘온라인 개학’을 결정했다. 아이들이 집에서 머무는 동안 부모의 재택근무, 휴직, 실직이 겹쳐지면서 정작 가족은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과 양육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다.
나도 어쩌다 아이 넷을 ‘아내가 낳고 키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늦둥이로 온 막내가 아직 중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큰 아이들은 벌써 성인이 되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훌쩍 자라는 사이에 나는 좋은 아빠였을까? 책을 집어들면서 가졌던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존 드레셔가 제시하는 10가지 제안은 더 이상의 요약, 강조, 압축, 재구성이 불가능한 십계명 같다. 그렇다고 이것이 어떤 ‘종교의 율법이나 수학 공식’ 같은 법칙이라는 뜻은 아니다. 각각의 제안은 본인의 경험에서 시작되었기에 진정성 있고, 사려 깊다. 심지어 부드러우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제목만 슬쩍 살펴보자. ‘아내를 더 사랑하고 싶다’, ‘자녀들과 더 많이 웃고 싶다’, ‘더 잘 경청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정직해지고 싶다’, ‘기도의 방향을 바꾸고 싶다’,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다’, ‘더 많이 격려하고 싶다’, ‘사소한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싶다’, ‘소속감을 심어주고 싶다’,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나누고 싶다.’ 심심한 결혼식 주례사와 같이 너무 뻔해 보이는가? 그러나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은 이 열 가지 제안은 지난 두 달 막내와 거의 24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어느 때 보다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으나 정작 가정폭력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우리는 다 안다.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가까운 공간에 함께 있어도 관계의 내용과 질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로서의 오랜 경험과 반추 가운데 다듬어져 등장하는 이 10가지 제안은 ‘육아를 위한 팁’이나 ‘가정을 지키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대본 없는 부모의 역할을 하며 가정을 이루게 된 이들에게 주는 사려 깊은 지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저자는 아빠의 역할과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아내가 읽어도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제안들이었다. 아빠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해서 번역본의 제목이 <내가 다시 아빠가 된다면>으로 결정 된 것 같다. (동의한다!) 하지만 원제인 <내가 내 가족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면>(If I Were Starting My Family again)이어도 저자의 의도는 성취되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아빠로서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의 기초 단위로서의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평의 초고를 읽은 아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은 우리 두 사람은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을 돌아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우리 곁에 24시간 머물고 있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큰 질문과 함께였다.
COVID-19로부터 N번방에 이르기까지 크게 요동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아의 원천으로서의 단단한 정체성과 건강한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단지 내 아이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나의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과 형제들과의 맺었던 관계를 떠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혹은 거리 둘 관계를 갖지 못한 이들도 떠올리게 되었다. ‘가정이 제일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모든 것을 환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의 기초 단위로서 흔들리지 않는 가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COVID-19의 위기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준다. 학교가 문을 닫고, 국경이 닫히고, 경제활동이 중단되고, 함께하는 예배가 멈춰졌다. 그렇게 많은 것들로부터 사회적 거리를 둔 사람들은 (가정이 있다면-) 이제 가정을 기초단위로 지내고 있다. 많은 두려움과 불확실성이 우리 앞에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내 곁에는 내가 사랑해야 할 이들이 있다. 이 위기가 지나고 나면 우리는 함께 보낸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저자의 10가지 제안은 예수의 십계명 요약과 같이 미국과 한국이라는 문화적 배경과 사회적 조건의 차이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갖는다. 이 얇은 책 하나가 이리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면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을 너무 늦게 만났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아직 막내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가족과 이 열 가지 제안을 함께 실천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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