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손봉호, 옥명호 / <답없는 너에게> / 홍성사 / 2015.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老철학자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말로 이 시대의 십대를 위해 남긴 인생이야기”
만약 심오하고 난해한 철학의 언어로, 지적 탐구심을 자극하는 책을 기대하였다면 이내 실망할 것이다. 오히려 이 시대를 가르칠 존경받는 스승이 십대의 눈높이로 ‘자신을 맞추어’(under-stand), 그들에게 자주 있을 법한 질문들에 대하여 쉬운 언어로 진솔하게 답을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70대 어느 할아버지가 손자의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주는 책. 어쩌면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저자에게는 철학논문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른이 된 독자들, 삶의 질문들에 나름의 철학과 신념을 품고 살아가는 성인 독자라면, 처음부터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치 산나물의 슴슴한 맛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 아이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그 눈 높이로 책을 읽은 필자에게 리뷰하는 필자에게는 저자 손봉호 교수의 말씀들은 언론이나 학술포럼 등에서, 멀찍한 저명인사로만 보이던 대표적 지식인의 것이 아닌, 슴슴하지만 풋풋했던 청소년시절의 저자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저자 손봉호 교수는 ‘신앙과 지성’의 괴리 없이 멋진 삶으로 살아내어, 우리 사회에 미친 큰 영향으로, 빛과 소금되어준 대표적 지식인 사회운동가이다. 그리고 공동저자 옥명호는 개혁적 복음주의자들의 소통의 장이 되고 있는 <복음과 상황>의 편집장으로서, 우리 시대 염색 문화로 물들어 있는 십대들을 대변해서, 손봉호교수가 안내하는 하나님 나라의 원색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이 시대의 십대들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면 아마도, 이런 해시태그로 가득하지 않을까?
# 이성 # 친구 # 가족 # 외모 # 진로 # 공부 # 돈 # 고통 # 신앙
이 해시태그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그들의 SNS에 산재해있지만,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부모들과 어른들에게는 금단의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만약 십대들이 다가와 리뷰를 읽는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그는 주위에서 흔히 보기 힘든 ‘좋은 부모 또는 신뢰하는 멘토’의 자격이 있는 분일 것이다.
“이성에 대한 감정과 욕구는 자유 아닌가요? 때로는 가족이 왜 제일 힘든 걸까요? 하기 싫은 공부,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나요? 왜 인생에는 고통이 끊이지 않는 걸까요? 신앙, 없다고 불편하지 않잖아요?” 등. 이러한 질문에 관해 여러분은 준비된 답을 가진 어른인가? 서평을 하는 필자는 26년 동안 미션스쿨과 기독대안학교에서 많은 학생들과 상담해온 교육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들에 대해 꼰대가 아닌 매력적인 설명을 해주기는 쉽지 않다.
책을 읽기 전 나는 대한민국이 윤리적이고 건강하게 거듭나기 위해 기독시민운동의 선봉에서 고난에 참여한 손봉호교수의 답이 궁금했다. 그리고 책을 통하여 저자 손봉호 교수가 고지식하게 신앙과 원칙을 지키려했던 청소년 시절. 주일을 안식일로 철저히 지키기 위해 체력시험을 보지 않아 중학교로 학력의 종지부를 찍을 뻔한 이야기, 주일에 나눠주는 수험표를 받으러 가지 않아 대학입시를 못치를 뻔한 이야기 등을 통해서, 공부보다 신앙원칙을 더 상위가치로 여겼던 성품의 단면을 확잉할 수 있었다. 그가 오랜 기간 함께 해 온 장애인운동,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설립 등의 시민운동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한편 나는 평소 변증에 관심이 많았기에,‘고통문제로 인해 신앙에 회의적인 십대’를 위한 손봉호 교수의 답도 궁금했다. 그래서 주신 말씀 중 불교의 관념적이며 현실도피적인 열반 대신, 기독교의 인류 스스로가 자초한 죄와 고통을 대신 체휼하는 성육신의 신비, 그리고 고통을 통과하며 마음이 가난해진 인간을 품어 그의 영원한 나라로 이끄시는 신비의 진리를 주목하신 대목도 인상이 깊었다. 특별히 손봉호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철학자로서, 파스칼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씀했다.“철학을 조롱하는 것이 진정한 철학을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자신이 연구한 철학자를 비판하지 못한다. 절대자를 절대자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상대적인 것을 절대자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우상이다. 세상에는 이념이나 정신을 우상으로 섬기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모든 이념이나 사상을 조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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