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는 현재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소립자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사 주셨고, 심심할 때마다 별생각 없이 펼쳐 읽곤 했던 <분자 원자 소립자>라는 만화책이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소립자 물리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당시에는 소립자의 종류나 소립자의 네 가지 기본 상호작용이란 것조차 전혀 몰랐지만, 그저 과학을 좋아했고, 왠지 물리학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고등학교 때 ‘한일 공동 이공계학부 유학생’ 파견사업에 선발되어 국비장학생으로서 일본 츠쿠바대학 물리학 학부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학자는 못 되었다. 현재 공부하고 있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 소지자에 걸맞는 자격을 갖추기까지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다. 현실도 녹록하지는 않다. 존경하는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여전히 부족함에 대한 지적을 받고 있다. 스스로도 박사학위 자격을 갖춘 독립된 연구자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오늘도 현실을 직시하고 반성하며 계속 연구 중이다. 물론 언젠가는 그 자격이 속히 갖추어지길 바란다.
나는 일본에서 석사과정을 마칠 즈음, 소립자 물리학 분야 중 ‘격자상의 양자색역학’(Lattice Quantum Chromodynamics)의 세계적 학자이신 지금의 지도교수님을 알게 되어 직접 찾아뵙고 지망하였고, 다행히 받아주셨기에 오늘에 이르렀다. 교수님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기도 하셔서,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덤으로 받고 있다. 전공 지도 이외에도 매주 제자들과 함께 성경공부 인도로 섬겨주신다. 제자들이 단순한 과학자로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인간이 되기를 동시에 기대하면서 신앙 지도까지 하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학생으로서 교수님의 엄한 지도와 훈련을 경험하게 될 때마다, 오히려 종종 제자들을 정말 아끼시는 마음이 느껴져 깊이 감사드리게 된다.
일본에서 석사학위 막바지에 정말 지치고 모든 걸 놔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신앙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나를 구한 것은 놀랍게도 페이스북에 한 그리스도인 청년 친구가 올린 잠언 9장 10절 말씀이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이 말씀을 읽자마자 나는 왠지 모르게, 앞으로 내 모든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면 좋겠다는 신기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근처의 ‘츠쿠바 성당’(내가 아는 한 그 지역에 개신교 교회는 없었다)이라는 곳을 자발적으로 찾아가 기도라는 것을 해 보았다. 그리고 성당 의자에 걸터앉아 고개 숙여 기도하는데,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등받이로 미는 체험을 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났다. 비록 천주교였으나 귀국 전날에 세례까지 받게 되었다. 귀국하여 공익근무요원 병역의무를 수행하면서 지금의 지도교수님을 찾아뵙고 공부를 이어가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받아주셔서 그의 학생이 되었다. 나를 신실한 그리스도인 교수님으로 이끄신 하나님, 그 교수님의 전도로 나는 결국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 청년이 되었다.
나에게 그리스도인 청년으로서 삶과 그 이전의 삶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전에는 오직 학구적 성취와 세상적 야망을 위해 살던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루하루를 물리학자가 되어가는 과정, 또는 나의 사상적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으로만 삶의 목표가 한정되어 있지 않다. 즉 언제나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곁에 허락하신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받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최고 지혜보다, 언제나 높고 깊으신 지혜자라는 것을 확실히 믿기에, 오직 그 분께 나의 모든 미래를 내어 맡기는 것이 최고 선택임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믿음이 없었던 시절의 버릇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아직도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굴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적지 않다. 이 고백을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순간만큼의 나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일 수 있을까?
내 인생 성경 구절이 된, 잠언 9장 10절 말씀이 늘 나와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정금을 만들어 가신다는 하나님의 진리가 현재의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쉽게 얻는 열매가 있다면, 당연히 그 가치도 대단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하고 좋은 열매를 위해 기도하고 소망한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죄 없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주 예수님. 그의 열매는 온 인류의 구속이었다. 그 은혜와 진리 안에서 어제보다 조금은 더 영적으로 성숙한 존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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