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현재 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아니다. 병원을 떠난 것은 익숙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1년 동안 근무했다. 그런데 근무를 하다 보니 어느새 환자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초심이 점차 무뎌짐을 발견했다. 환자를 진심으로 위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내가 생각했던 간호사의 모습이 아니었고 변화가 필요함을 느꼈다. 주일예배를 매주 성수(聖守)하지 못하고 몸이 힘들다는 등의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봐도, 나를 병원에서 나오게 한 가장 큰 원인은 익숙함에서 오는 매너리즘 때문이다.
병원에서 나온 후 하나님의 은혜로 ‘정신건강복지센터’라는 상담기관의 간호사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주 업무는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상담해주고, 그런 사람들을 조기에 발굴하여 질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일은 정신적으로 정말 힘든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한다. 그리고 상담해주는 시간을 통해 나 역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고, 익숙함이 촉발하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나는 최근, 일 자체에 대해서 보다는 관계적인 부분에서의 익숙함으로부터 오는 어려움이 생겼다. 즉 요즘 대부분의 직장에는 그리스도인의 비율이 굉장히 낮은데, 내 일터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나 혼자였다. 그러다 보니 직장 안에서 신앙적인 고민을 나눌 사람은 없었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외로웠다. 그런데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적이 다시 나를 공격해왔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믿지 않는 사람들과 동화되어 가고 그것에 익숙해져 가는 현실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나는 교회 생활에서도 종종 ‘익숙함’이라는 적에게 침투를 당했다. 모태 신앙으로 자랐기 때문에 주일은 곧 교회 가는 날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은 주일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늘 강조하셨다.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나누고 교제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 생활 역시도 너무 익숙해져서 일종의 습관처럼 되어버렸던 것 같다.
‘코로나 19’ 정국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최근 대부분의 교회가 안전을 이유로, 주일에도 현장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영상으로만 예배를 드리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처음에 집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무리 옷을 갖춰 입고, 주어진 시간에 잘 드리려고 해도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예배에 집중하기 힘들었고, 친구들과 만나 교제하지도 못하게 되자 마음이 이상하게 힘들어졌다. 그런데 이 ‘코로나 19’ 정국에서도 나는 온라인 예배가 2~3주 이상 지속이 되자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예배를 드리니 편하네?” 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3~4번 드리던 예배를 1번으로만 끝내고, 목장에서 말씀을 서로 나누는 시간도 없어졌는데,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네...” 하는 마음이 생겼다. 온라인 예배를 드린 후 침대에 누워 쉬는 것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후 큐티, 말씀 묵상 등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시간도 점차 줄어들었다. 주여 어찌할꼬.
나는 요즘 살고 있는 대구 지역의 ‘코로나 19’ 확산이 상당히 누그러지면서 다시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 얼마전 속해 있는 청년부의 예배 후, <교회오빠>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고(故) 이관희 집사님의 투병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작품인데, 나에게 코로나 사태 이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식어있는 모습을 반성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영화에서 고(故) 이관희 집사님은 투병을 하는 그 힘든 과정에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놓지 않았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영적으로 죄와 처절히 싸웠다. 특별히 죽음의 문턱 앞에서조차 죽음이 아닌 하나님과의 단절을 두려워하는 집사님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코로나 19’ 기간 동안 하나님과 관계가 무뎌지고 소원해졌던 나 자신의 모습이 깨달아졌다. 지난 2~3개월 동안 영락없이 편안함과 게으름에 익숙해져 하나님을 멀리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많이 부끄러웠다. 비로소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는 고백과 회개를 참 많이 하였다.
나의 경우,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적은 종종 편안함을 주지만, 점차 게으르고 나태하게 하여 죄에 빠질 위험을 증가시킨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으라”(마9:17) 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익숙함이 가져다주는 영적인 해악들을 경계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그것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며, 싸워 이길 수 있도록 항상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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