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영화 <컨테이젼>
<컨테이젼>(2011. 소더버그 감독)은 정말 놀라운 영화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부터 10년 전에 나온 작품이 2020년도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쥴 베른의 해저 탐험소설이 시대를 훨씬 앞서갔던 것처럼. 물론 바이러스에 의한 인류 비극은 이미 오래전에 등장한 시대사적 문제였다. 일차 세계대전(1914-1918) 때 생화학전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수많은 군인들이 상해를 입었다. 100년 전 일이었다.
그렇다면 100년 동안 잠재해 있던 바이러스가 이제 지구촌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고 인류가 현명하게 대처했다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바이러스 연구를 폐기했어야 했다. 더구나 전쟁용, 살상용으로 극단의 변종 바이러스 실험은 전적으로 폐기했어야 했다. 핵폭탄 제조와 같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부딛쳤으나 인류는 여기서 낙심하고 무릎 꿇을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크리스천과 교회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야기된 혼란을 극복하는 지혜와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상영 후 10년 뒤 재연
미치 엠호프(맷 데이먼)는 바이러스에 직격탄을 맞은 가장(家長)이다. 아내는 홍콩 출장을 다녀온 후 이상 징후를 나타냈고, 어느 날 병원에 실려갔으나 사망한다. 게다가 아들마저 감염되어 끝내 숨지고 만다. 엠호프는 이제야 미디어가 실어나르던 지구촌 다른 지역의 문제인 줄 알았던 바이러스 전염병이 자신에게 직접 연관된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만다.
지역은 봉쇄되고, 시민들은 불안에 떤다. 개나리 추출액이 치료에 효과 있다는 소문이 떠돌자 수많은 인파가 마트에 몰려든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물량 때문에 약탈에 폭동으로 번진다. 하지만 개나리액 효과는 가짜뉴스였다. 봉쇄로 인해 사재기는 극성을 부리고, 군식량 배급마저 역시 부족하니 사회는 집단 히스테리적 증상에 빠져든다. 시민들은 바이러스 블루(Virus Blue)로 우왕좌왕 중심을 잡지 못한다(현재는 코로나 블루).
우리나라 경우,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약탈, 폭동은 물론, 사재기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성숙한 시민 정신이라 하겠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영화같은 장면이 재연되기도 했다. 지역 봉쇄는 물론이고 불안, 분노로 인해 사재기, 약탈 등이 일어났다.
이 상황에서 각국 정부, 질병관리기관은 재빠르게 움직인다. 군(軍)은 병력을 동원하여 사회 질서를 안정시키고 비상식량 배급으로 시민 봉사에 나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 감염 정보와 경로 확인에 전문가를 동원하였다. 2020년도 세계보건기구가 얼마나 정의롭게 처신했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하고, 영화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제약회사들도 역시 분주하게 움직였다. 바이러스 전염사태는 제약회사에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백신 개발은 인류 보건에 이바지할 뿐 아니라 경제적 이익도 가져다주기에. 바이러스는 생명을 담보로 한 싸움이 우선이지만 배후에는 음모론이나 정치적 계산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는 영화에서나 지금의 현실에서 아주 배제되지 않는 사실이다.
우리도 ‘코로나 19’를 두고 정치적 손익 계산에 버금가는 논쟁들이 일어났고, 실제로 이익을 본 집단이 있었기에 말이다. 신천지로 인해 기성교회에 가해진 공박과 비난은 납득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미국은 대통령이 앞장서서 국가기도의 날을 정하여 기도를 요청하는 모습이 참으로 대조적이다.
회복의 소망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바이러스 감염원이 오염된 돼지고기로 보여준다. 홍콩의 한 호텔 주방에서 발원한 바이러스는 주방장, 요리사, 바텐더, 종업원, 고객들 접촉 등으로 삽시간에 확산되었다. 이렇게 접촉된 감염자들은 세계로, 직장으로,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감염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증상이 드러나기까지 어느 누구도 치명적 바이러스가 일상생활 속으로 그렇게 침투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제 제2, 제3의 코로나 변종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사회적으로 의료적 조치는 당연히 우선되어야 한다. 전문의료진의 처방은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밀폐공간 피하기 등 개인위생을 강조한다. 여기서 무엇을 주저할 것인가.
둘째, 사회적 불안과 일명 코로나블루로 보이는 현상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적극적으로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교회 자체도 모임 자제라는 권고를 받아들이는 상황이지만 가능한 대처방법을 최선으로 활용해야 한다. 사회적 집단 히스테리 증상이나 개인적 심리장애를 교회 차원에서 접근해갈 때 치유 방법이 찾아질 것이다.
셋째, 이제는 겸손히 인류의 영적 실상을 돌아봐야 할 때이다. 성경과 기독교 세계관으로 다시 세상을 변혁해야 한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살전 5: 19, 20).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미래 시대에 성령과 예언은 어떻게 인간의 길을 인도하실지 기대해야 한다.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창 1:28)만 섬기고 순종할 때 회복의 소망은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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