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판화 <닥터 슈나벨>(Doctor Schnabel von Rom,1656)은 전신을 단단한 보호복으로 감싼 한 의사가 새부리를 한 마스크를 쓰고 환자를 찾아나선 장면을 소재로 하였다. 이것은 17세기에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흑사병 의사가 실제 착용하였던 복장이라고 한다. 숨쉬기조차 힘겨워 보이는 보호복에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잘 나타나 있다.(이미지 1, 판화 <닥터 슈나벨>(1656년), 영국 박물관 소장)
한번 감염되면 수일 내에 사망할 수 있는 치명적인 병이니 심리적 공포감이 대단했을 것이다. 지금도 전염병의 영향은 실로 막강하다. 모든 사회 영역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 19’(COVID-19)로 인해 혼자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필자는 미술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의 미술계는 6.25 전쟁 이후 눈부신 경제발전과 함께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었다. 미술 인프라가 전무했던 상황에서 작가, 화랑, 애호가가 형성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미술문화를 조성하였다.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미술계를 이끌고 미술시장이 작가들을 뒷받침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미술품을 재화의 가치로만 보는 시각이 만연하게 되었으며, 전시문화는 온갖 ‘아트페어’나 ‘미술경매’로 바뀌고 작가군(群)도 크게 ‘팔리는 작가’와 ‘안 팔리는 작가’로 양분되었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옥션에서 누구의 작품이 얼마나 올랐고, 최고가를 경신했는가를 앞다투어 소개한다. 인간의 정신적 활동이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이 말한 ‘시장사회’(a market society)로 편입되어버린 셈이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19’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정신적인 충격과 함께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한 방향성을 검토하게 되었다. 그간에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해야겠다는 조급함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과연 그것이 옳았는지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코로나 19 이후 미술계의 몇몇 달라진 양상도 주목된다. 국내외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온라인 뷰잉룸’, ‘버추얼 투어’ 등 새로운 플랫폼을 제공하거나 작가들이 ‘줌’과 ‘스카이프’ 등을 이용해 대중과의 소통에 나서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한 작가가 다른 작가 3명을 지명해서 그들을 소개하거나 예술가로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을 게시하는 ‘아티스트챌린지’가 이어지기도 했다. 또 일각에서는 ‘재난’과 관련한 전시를 열기도 했다. 격리된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과 삶을 나누는 시도가 눈에 띄었다. 상업화로 골치를 앓고 있는 영국에서도 삶을 나누는 시도들이 있었다. 런던 왕립미술학교에서는 ‘#RAdailydoodle 프로젝트’를 펼쳐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다른 트위터에서도 비슷하게 ‘두들 챌린지’(Doodle Challenge)를 시도했는데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재난상황 속에서도 “햇빛이 충만한 멋진 날을 향유할 수 있다”고 여기며 그날그날 일상의 모습을 스케치한 작품을 올려놓았다.
“사람들과 실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 동안에는 미술관에 있는 사회적 공간을 놓치고 생활했습니다만, 그것은 우리가 적절치 않게 처신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다시 미술관 문을 열게 된다면, 이를 고칠 수 있게 되겠지요.”
영국 테이트 갤러리의 프란시스 모리스(Francis Morris)관장이 한 말이다. 코로나 19 감염증 이전만 해도 전시장을 찾아오는 관람객들을 당연시했으나 막상 미술관을 락다운한 뒤에야 얼마나 그들의 존재가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사람없는 미술관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코로나 19는 그간 우리가 그토록 애를 쓰고 획득한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불안전한 상황에서는 균형감각을 잃기 쉽다.(이미지2 - 스트레이트 타임즈 2020년 3월 24일자는 '명예로운 새로운 배지'라는 제목으로 '코로나 19' 최전선에서 싸우는 대구 동산병원 간호사들의 사진을 게재했다. 출처-AFP)
그러므로 현재의 국면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은 그것이 우리의 ‘위험한 열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주었다는 점과 그럼에도 우리가 추구할 것이 무엇인지 분별해내는 데에 있다고 본다. 개인주의와 물질의 풍요로움에 안주하는 것을 극복하는 동시에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인종과 국가를 넘어 연약한 지체와 타인을 이해하는 예술의 실천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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