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빈곤의 문제>
추천: 웨슬리 웬트어스 (Wesley Wentworth, 선교사)
해제: 황영철 (수원성의 교회 담임목사)
<The Problem of Poverty>/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Jr. Kuyper)/ Baker Book House/ 1991.
원래 이 해제란은 미번역 도서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이미 번역된 책을 선택했다(국역: <기독교와 사회문제> |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첫째는 이미 번역 출판된 책이 거의 사장된 사실 때문이고, 둘째로 이 책을 사장시키기에 너무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 서평이 이 명저에 대한 관심의 불씨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영어본의 무게를 달아보니 115그램이었다. 하지만 책의 무게를 어찌 물리적인 무게로 측량할 수 있겠는가? 감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가르쳐 준다.
미국의 The Center for Public Justice에서 활동하던 James W. Skillen이, 초판 출판 100주년 기념으로 1991년에 이 카이퍼의 연설을 편집하고 앞에 소개의 글을 덧붙여서 Baker Book House에서 115그램짜리 책으로 출판한 것이 이 책이다.
카이퍼가 이 연설을 행한 1891년은 유럽 사회가 극심한 위기를 겪고 있던 때였다. 1867년에 출판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이 그 시대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산업혁명의 결과 축적된 막대한 부가 극소수의 자본가에게 집중되고 도시 노동자와 농민을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극단적 빈곤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카이퍼는 마르크스를 은근히 옹호하면서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이 한시적인 유행이 아님을 경고한다(53).
이 책 제목의 변천사를 보는 것은 흥미롭다. 이 연설이 1891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을 때에는 <사회문제와 기독교>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1950년에 최초 영어판이 나왔을 때에는 <기독교와 계급 투쟁>이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그리고 1991년 판에서는 <빈곤의 문제>가 제목으로 정해졌다. 이는 그만큼 이 책의 내용이 포괄적이라는 뜻이다. 내용을 종합해 보면, 당시 유럽 사회에 만연한 빈부 격차를 통해서 드러나는 사회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카이퍼는 먼저 빈곤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초대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우리는 현시대의 사회적 필요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당시 유럽에서는 빈곤의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무엇인가 대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광범위하게 시도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참된 신자라면 당연히 거기에 대해 저항하면서 그 상황을 고치기 위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런데 카이퍼는 신자의 행동을 요구하기에 앞서서 빈부 격차의 뿌리를 설명한다.
가장 깊은 뿌리는 타락의 현실이다. 타락은 자연과 인간에 대해 두 가지 함의를 가진다. 원래 인간은 번성하여 사회를 이루며 자연에 인위적인 노력을 가하여 자연과 인간을 더욱 고상하게 향상시켜야 하는 존재로 출발했다. 하지만 타락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발생했는데, 타락이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양상의 하나는 오류이고 다른 하나는 죄악이다. 오류는 무지의 결과로서, 인간에 대해서와 사회에 대한 무지가 만들어 내는 실책이다. 다른 하나인 죄악은 탐욕이라는 현상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가 곧 빈곤이라는 것이다.
빈곤이 타락의 사회적 현상이라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빈곤에 대해 취하신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빈곤한 자의 편에 서심으로 빈곤의 현실이 고쳐져야 할 죄악임을 실천으로 보여 주셨다. 이것은 또한 성경의 일관된 교훈이기도 하다.
따라서 빈곤은 고래로 인간 사회의 항구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카이퍼 당시의 사회에서는 그 이전에 발생한 프랑스 혁명이 좀 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카이퍼는 주장한다. 도식은 비교적 간단한데, 프랑스 혁명의 무신론이 두 가지 점에서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가운데서 발생한 개인주의가 원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인간 사회의 유기체적 공동체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신론에 수반된 철저한 현세주의가 현세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되었고 그만큼 사람들은 돈에 더욱 매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대안으로 일어난 것이 사회주의 운동이다. 프랑스 혁명의 기본 이념과 궤를 같이하는 민주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제로 발전하는 국가사회주의가 당시 빈부격차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대해 카이퍼가 이 책에서 제안하는 대안은 기독교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프랑스 혁명의 무신론으로 말미암아 파괴된 사회의 유기적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카이퍼의 이 사상이 유럽의 기독교 사회주의 전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과정은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내실이 건강하지 못한 보수주의와 이론으로만 앞서가는 듯한 진보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한국의 그리스도인에게, 카이퍼 같이 정통 신앙과 진보 어젠더를 함께 아우르는 위대한 정치가를 가진 사회가 부러울 뿐이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런 정치 철학과 사회적 실천의 조합은 칼뱅주의로 명명되는 개혁 신학의 장점이었다. 칼뱅주의가 그렇게도 많이 회자되는 한국의 교회에서도 이런 운동이 일어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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