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코로나 19’가 지금 전 인류의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역사에서 질병 하나가 전 세계 주민들의 삶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친 경우는 별로 없었다. 과학, 과학기술, 특히 의학과 생명공학의 큰 발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처럼 그런 분야들의 첨단에 있는 나라들이 더 크게 허덕이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할 수 있다.
독일 철학자 뢰비트(K. Löwith)는 그의 <세계역사와 구원역사>(Weltgeschichte und Heilsgeschichte, 영어번역 판, Meaning in History)에서 역사발전의 법칙이나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따지는 역사철학은 이제 사라졌고 역사신학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즉 기독교에서만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어떤 사건도 무의미하지 않고, ‘코로나 19’처럼 중요한 것은 결코 우연한 사건이라 할 수 없다. 반드시 의미가 있고, 가능하면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많은 종교들은 모든 것이 운명에 따라 일어난다는 숙명론을 제시했고 세속화된 현대인은 인간 사회의 모든 것은 우연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전제하기 때문에 이번 전염병도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고 아까운 생명을 앗아가는 전염병을 사랑의 하나님이 허용하셨다는 것은 그럴듯하지도 않고 인기 있는 주장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욥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 2:10)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고통과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라도 그것을 뜻하시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므로 어떤 고통과 죽음도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하다 할 수 없다. 비록 쉽게 납득되지도 않고 즐겨 주장하고 싶지도 않지만 “하나님이 원하셔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재수가 없어서 당했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더 의미 있고 위로가 될 수 있다.
성경은 전염병을 비롯한 모든 재난을 일단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본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어떤 심판이나 처벌도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표현이다. 개인과 사회의 죄를 회개하고 그 이상 범죄하지 말라는 경고며 잘못된 것을 고치라는 신호다. 물론 ‘코로나 19’가 구체적으로 어떤 죄, 누구의 잘못 때문이라고 꼭 집어 지적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그 죄를 찾아 회개하고 잘못을 고쳐야 할 의무가 있다.
자연환경 파괴는 분명히 큰 잘못이며 이 재앙의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 더 큰 편의와 사치를 위하여 인류는 자연을 지나치게 훼손했고 삶을 너무 인공적으로 만들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삶이 자연에서 멀리 떨어져 인공적이 된 선진사회에 더 많은 ‘코로나 19’ 감염자와 사망자가 생겨났다. 그런 사회일수록 지금도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끼기 등 이웃의 안전을 위한 인간적 배려는 무시하고 오직 치료제와 백신에만 목을 매고 있다. 인공적인 원인에 의한 재앙을 인공적인 방법으로만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지구온난화가 계속되어 오랜 시간 얼어있던 남. 북극 지역이 녹게 되면 그 속에 묻혀 있던 옛날의 병원 바이러스들이 다시 출몰할 것이라 한다. 심각한 위협이다.
그 외에도 가난한 사람은 병들고 죽고 부자는 살아남는 미국이나 병원이나 의사보다는 경기장이나 운동선수들에게 더 투자하는 유럽국가들의 사회제도도 바꿔야 하고, 어리석은 개입으로 무수한 사람을 희생시킨 잘못된 지도자들이 선출될 수 있게 한 인기영합적 민주주의도 근본적 반성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엄청난 고통의 원인을 발견하고 제거하지 못하면 그 고통은 결국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고 더 큰 고통이 올 수도 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고, 특히 큰 고통을 가져온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
다른 세계관과 달리 기독교 세계관은 객관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세계관은 기독교적이라 할 수 없다. 종교사회학자 스타크(R. Stark)는 그의 <기독교의 승리>(The Triumph of Christianity)란 책에서 주후 165년에 전염병 (천연두로 추측됨)이 창궐하여 황제 오렐리우스를 비롯한 로마 인구의 1/3에서 1/4이 사망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길거리에 버려진 환자들을 돌보았다고 했다. 그 덕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사망률은 2/3로 줄었고 그들의 사랑에 감동받아 많은 사람들이 개종해서 전염병이 기독교 성장에 크게 공헌했다 한다.
재난은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을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다. 대구 동산병원은 공공의료기관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대구지역 방역센터 역할을 자원해서 맡아 잘 수행하였으므로 불교 단체로부터 ‘만해실천대상’을 받았고, 집단 감염으로 욕을 먹은 부산 온천교회는 치료제 개발을 위하여 감염되었던 교인 전원이 혈장을 기부하고 5천만 원을 방역사업에 바치므로 기독교의 체면을 살렸다. 그러나 경고를 무시하고 모임을 강행하다 집단감염 진원지가 된 교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가렸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방역에 힘쓰므로 한 사람이라도 덜 감염되게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병든 사람을 간호하며 치료해야 기독교 세계관에 적합하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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