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학부와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에 비교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 시절 나는 반(反)기독교적 문화의 맥락 속에서 현대 대륙 철학과 후기구조주의 사상들을 배우며, 그 저변에 깔린 인본주의 사상과 그 귀결점이 되는 허무주의를 목격했다. 주창자들은 진리를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교만한 입장들에 눈이 가려 창조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도, 그분의 사랑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조차 없게 하는 고아와 같은 현시대의 모습이었고,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진정한 실존은 결국 주님 앞에 선, 즉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인 것을 계속 붙들고 전하고 싶었다. 생명의 진리는 선악과를 따 먹듯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누리며 살아내는 것이며,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나타난 그 사랑 안에는 넘치는 자유와 기쁨이 있다고 선포할 수 있기를, 또한 이 세상의 아픔을 치유하는 도구가 되기를 기도했었다.
작년 가을, 용기를 내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학부 시절부터 품었던 사명을 좇아서, 캐나다 토론토에 소재한 ‘기독교학문연구소’(Institute for Christian Studies)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기독교학문연구소’는 오늘날 인문학과 철학의 담론 속 난제들에 대하여 기독교적 해답을 찾아내고자 하는 연구 방향을 가지고 있다. 조금은 멀게 돌아왔지만, 늦게나마 주님께서 부르신 길에 와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아침마다 기숙사에서 눈을 뜨고,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학자로 성장하기를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이전의 나는 ‘신앙과 학문’이라는 이 두 세계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지만, 이 연구소에서는 마침내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기뻤다. 매 수업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가장 진실한 ‘나’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점에서 감동이 느껴졌다.
‘기독교학문연구소’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한 지 어느덧 일 년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현재 사실 신앙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깊이 있는 연구를 할수록, 기독교 학문 자체 내, 여러 갈래로 나뉜 교리들과 새로운 이론들을 접하게 되면서, 그 사이에서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비진리인지를 구별하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문학 석사과정 때 받았던 인문학적 도전조차 나의 신앙 자체를 이토록 흔들지는 못했었다. 그 당시는 오히려 불변의 진리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기에 주님께 더욱 매달리며 공부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에 반해, 지금의 나는 그렇지 못하다. 상충하는 다양한 신학적 견해들이 공존하는 이곳 연구소에서 신앙적 혼란을 극복하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교 분석하고 상대화시키는 태도에 더 익숙해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특정 교리가 만유의 창조주이신 초월적 하나님을 대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나의 개인적 신앙의 영역에서 언제나 산처럼 든든히, 그 불변의 자리에 계시던 하나님은 이제 내가 하는 학문의 영역에서 각자의 주관적 해석 지평들로 상대화되어 들어오신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도 다소 느낀다. 박사과정 공부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단언할 수 없게 하는 것 같아서, 그분의 임재를 온전히 느끼며 동행한다는 것이 더 힘겨워졌다.
나는 현재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치우칠 수 없는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긴장을 지키느라 신앙의 안정감을 잃은 상태로 곧 다가올 가을 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 예수님께로 가려던 베드로를 떠올려 본다. 안정된 기반이 되던 배를 버리고 물 위로 발을 내디딜 용기는 있었으나 함께 계신 예수님만을 바라보지 못해 이내 물에 빠진 그의 모습에서 나를 보는 것만 같다. 어쩌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향해 나아가며 내가 진정한 ‘나’를 알아가고 있다는 그 황홀함이 독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한다. 시선을 나에게서 주님께 돌이켜 다시 한번 주님께 매달린다.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렇게 예수님께 외친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나의 연약함보다 크신 아버지의 긍휼을 붙들며 기도한다. 소유가 아닌 관계로 주님을 알아가게 하소서.
이 짧은 지면을 채울 글을 담담히 써 내려가기가 참 어려웠다. 필자가 예상치 못하게 현재 직면하고 있는, 신앙과 삶의 자리가 복음주의적 진리 안에서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는 많은 생각의 조각들 때문이다. 필자는 부끄럽게도 개인적 신앙의 영역에서, ‘재난사회’라는 이번 호 <신앙과 삶> 특집 주제에 걸맞은 재난 수준에 가까운 지각변동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진행형의 혼란을 지면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 고민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진솔하게 고백하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 이 부족한 글로도 혹시나 나와 같은 흔들림 속에 있는 청년들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후에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주님이 이 순간에 어떻게 나와 함께 하셨는지 돌아볼 수 있는 기록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4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