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 <엑시트> (EXIT, 2019. 이상근 감독) -
재난의 일상화
현대 사회는 위험하다. 삶의 곳곳에 불확실성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18세기, 19세기를 지나며 산업화와 개발 경쟁이 극대화되자 자연은 신음 상태에 빠진다. 이른바 자연의 역습, 자연의 보복, 신의 심판이란 말로 해석하며 지구의 종말까지도 언급하는 상황이다. 20세기 들어서는 세계규모의 전쟁을 두 차례나 치렀고, 여기다 군비경쟁이 가열되어 핵무기가 인간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핵 개발의 위험성은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태와 그 후유증 등을 통해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세계는 온난화로도 이미 큰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 북극, 남극 만년설 지대가 녹아내렸다. 알프스와 같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했던 만년설은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2020년 여름, 중국과 일본에 불어닥친 태풍은 이재민만 5천만 명을 넘어서는 국가적 재난을 불러왔다. 해수면 상승으로 여러 지역 섬나라들이 물에 잠기고 있다. 재난과 지구 종말은 최근에 들어와 일상의 화두가 되었다. 이른바 위험사회(Risk Society)에 진입한 것이다.
재난영화 <엑시트>
영화 <엑시트>(EXIT, 2019)는 재난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 전선에서 기회를 엿보던 청년 용남(조정석)은 어머니 칠순 잔치를 하는 중 난리를 겪는다. 억울한 어느 기업인이 대형 트레일러에 정체불명의 가스를 노출시킨 것이다. 이 가스는 순식간에 도시를 집어 삼킨다. 호흡기에 들어가면 죽음에 이르는 살인적 독가스였다. 잔치는 난장판이 되고, 옥상으로 모두 대피하는데 옥상 문이 그만 잠겨버린 상태였다. 용남은 대학 시절 산악동아리에서 만난 친구 의주(윤아)와 함께 고층건물을 타고 올라가 끝내 가족들의 구출을 돕는다. 용남과 의주는 가족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스스로 가스 지대를 탈출하려 한다. 이 두 남녀는 천신만고 끝에 안전지대로 이동하여 살아난다. 해피엔딩 스토리이다.
영화 전체에 깔린 배경은 독가스다. 재난의 일차적 원인은 독가스가 확실하다. 그런데 그 원인이 특이하다. 인재(人災)는 인재인데 현대 사회 구조와 깊은 관계가 있다. 독가스를 살포한 사람은 어느 회사에서 퇴출되었다.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강제 퇴출이 되니 원한이 없을 수 없었다. 원한 관계에 의한 복수, 분노 행위인데 현대 사회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갑질이다. 개인이 거대공룡인 회사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 혹 노동조합 같은 단체라면 또 모를까. 이 사람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자 가스 살포를 무기로 삼았다. 인재에 의한 재난으로 사회는 더 혼란에 빠진다. 여기에서 현대 사회에 문제 되는 불공정, 노사관계, 경영진 갑질 등이 드러난다. 재난의 원인은 이미 회사 구조 안에 들어있다. 즉 개인은 집단을 이길 수 없다는 불문율이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언제든지 인재가 발생할 수 있다. 끝까지 해결되지 못한 개인과 집단 간의 문제가 재난의 불씨가 되고, 수많은 선량한 시민을 위험에 몰아넣는 것이다.
<엑시트>가 보여준 재난 극복
첫째, 인재는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노사의 갈등은 원만히 해결되지 못한 불행이 원인이었다. 현재 노사간의 문제를 해결할 법적, 행정적 장치는 보완되어 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회사의 갑질이 만연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노동자의 권익이 무시되지 않는 공정 사회는 인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둘째,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재난이 벌어졌다. 재난 가운데 이 슬기로운 가족은 한마음으로 뭉쳤다. 아버지 어머니를 중심으로 서로서로 가족을 챙기고, 부상당한 식구를 우선적으로 돌보며 옥상으로 올라간다. 아우성 속에서도 가족애는 빛났다.
셋째, 옥상 문이 잠겨 있는 당황한 순간, 용남이는 가족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수직 벽의 건물을 타고 올라간다.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용남이처럼 가족애를 발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용남이는 끝내 옥상 문을 열어 가족을 구하게 된다.
넷째, 용남이와 의주는 어떻게 재난을 이겨냈을까? 둘은 대학 시절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으나 헤어졌던 그들. 재난 속에서 서로를 구하겠다는 마음이 용기와 담력이 되었다. 재난을 통해 둘의 사랑이 재확인되고 있었고, 둘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생각케 하는 두 단어, 원한과 사랑
<엑시트>에서 재난은 원한에서 시작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원한을 사지 않도록 하는 관계의 지혜가 필요하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신다.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신 24:17)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 27:19). 사회에 억울함으로 원한과 분노를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이다. 혹 재난이 생겼을지라도 사랑으로 대처한다면 극복의 길이 열리게 되리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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