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유네스코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95,000개 박물관과 미술관 중 90%가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문을 닫았으며, 10% 이상은 결코 다시 열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공립미술관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있으니 아직 걱정할 게 없겠으나 사립미술관의 경우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개인 화랑들의 처지는 더욱 심각하다. 몇 달째 휴관 상태이다보니 이전이 좋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전시장을 활보할 수 있을까?
미술관과 화랑의 위축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은 애호가들일 것이다. 미술은 속성상 ‘실제적 접촉’이 중요하다. 유튜브, SNS, 각종 미디어를 통한 전시 등이 시도되고 있으나 직접 체험이 주는 만큼의 감동을 선사하기 어렵다. 인간의 신체성은 경험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에 예술작품의 직접적 경험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인 조나단 파인버그(Jonathan Fineberg)는 이렇게 우려한다. “우리 삶의 감각은 더 이상 개인적 의미에서 서로 관계하지 않는 일종의 가상공간으로 밀려나고 있다.......우리는 우리의 신체를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경험의 무대 위에 올려놓아야 하지만 인터넷은 어떤 면에서 우리를 경험의 무대 밑으로 밀어낸다.” 그러나 요즘처럼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인간을 크게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당분간 간접 체험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난은 우리가 피하고 빨리 극복하고 싶은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인간 됨의 가치를 환기시키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피카소(Pablo Picasso)의 <게르니카>(Guernica)는 나치의 잔혹한 폭격에 맞서서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다.
(피카소, 게르니카, 1937)
그런가 하면 중국의 쟝 사오강의 <혈연>은 전체주의 통치 아래 고통받는 중국인을 떠올리게 한다. 일찍이 가혹한 문화혁명을 거친 쟝 사오강은 우연히 발견한 가족사진을 보고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전체적으로 차분하며 싸늘한 색채의 분위기 속에서 경직된 인물의 표정과 얼굴로 흘러든 상처의 흔적은 크고 맑은 눈동자에 부딪쳐 보는 이의 연민을 자아낸다. 한편 에드바르드 뭉크(Edward Munch)의 <자화상>은 수천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에 전염된 자신을 그린 것으로 잠자리를 많이 뒤척인 듯 시트가 마구 흩어져 있어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절규>나 <병든 아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고통(sufferings) 문제를 다루어온 뭉크가 이의 연장선상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재난의 이슈와 연관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Marcantonio Raimondi)의 판화이다.
(이탈리아 점염병을 소재로 한 라이몬디의 판화, 16세기)
라파엘의 드로잉을 모작한 이 작품은 이탈리아에 횡행한 전염병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림의 소재는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에네이드’(Aeneid)를 배경으로 트로이 전쟁에서 패망한 후예들이 타지에서 전염병을 만나 시련을 겪는 장면을 설정하였다. 화면 우측의 남성은 아이를 제지함으로써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으며 죽은 여인의 남편으로 추측되는 맞은편의 남성은 여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그림 좌측 상단에서는 환자를 돌보는 수녀들의 간호장면을 볼 수 있고 그 아래에는 죽어가는 양들을 지켜보는 목동의 안타까운 시선을 잡아내고 있다. 그 외에도 후경에 묘사된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고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을지 숙의하고 있다. 미술가들은 시련을 겪는 사람들을 ‘정체불명의 집단의 일원’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개별적 인간 존재’로 다루었다. 이때의 감정을 요즘 말로 바꾼다면 ‘공감’이 될 것이다. ‘코로나 19’로 생명을 위협받는 근래에 거리미술가 뱅크시(Banksy)는 영국의 싸우스 햄튼 종합병원에 흑백그림 한 점을 기증하였다.
(뱅크시가 싸우스햄튼 병원에 기증한 게임체인저, 2020)
<게임 체인저>로 명명된 이 그림은 한 소년이 광주리에 배트맨과 스파이더맨과 같은 히어로들을 제쳐놓고 간호사를 자신의 ‘슈퍼히어로’로 삼았다. 뱅크시는 “당신이 하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흑백그림에 불과해도 이곳이 조금 밝아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간호사들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공감 능력을 점점 더 상실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뱅크시와 같은 예술가들이 있다는 자체가 조금은 위안이 된다. 삶이 힘들어도 누구와 함께하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위로자이자 치료자이신 예수님과 동행하고 또 이웃과 함께한다면 더 심한 재난이 오더라도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이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고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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