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흔히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을, 지나치게 교회 안에만 묶어두려고 했던 한국교회는, 전환기 시대 속에서 그 설 자리를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참 서글픈 현실이다. 우리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에 회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신앙과 삶의 문제는 이 시대 광장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인 동시에 목사로 살아가는 나에게도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여전히 버거운 인생 최대의 과제 중의 과제이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대사회적인 부끄러운 자괴감 때문에 몸 둘 바를 찾지 못할 지경이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여기 있는 이유를 말해 주겠다. 너희는 소금을 쳐서 이 땅에 하나님 맛을 드러내라고 여기 있는 것이다. 너희가 짠맛을 잃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경건의 맛을 알겠느냐? 너희가 쓸모없어지면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유진 피터슨, <The MESSAGE>)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면 오늘의 한국교회는 길 밖에 버려진 채 사람들이 마구 짓밟고 다니는 소금과도 같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어 버린 오늘, 사람들은 한국교회 개신교인들을 타종교인들과의 비교에서 ‘상대적인 거리 두기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그 정서에 밑바닥에 숨겨진 역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타종교인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문제가 더 많아서라기보다는 더 근원적인 문제의 요인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고유의 그 짠맛’ 곧 ‘하나님 맛’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교회는 오늘 우리 시대의 광장 한복판에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신앙과 삶’의 맛을 가지고 있는 신앙과 삶의 공동체이다. 신앙과 삶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통전적(統全的)으로 드러나는 실존의 문제다. 이론적인 논설보다는 필자가 며칠 전에 겪었던 실제의 사건 하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며칠 전, 필자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의 출신 전도사님 한 분이 목사로 임직하는 예식이 있었다. 목사 임직을 주관하는 노회에서, 안수자의 목사 임직을 위한 안수 기도자로 두 사람을 초청하게 했다. 필자가 그중 한 사람으로 그 예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예식에 참여하면서 필자는 주차장이 협소하다는 안내가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버스나 전철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왕복 이동에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코로나 상황으로 택시 기사 분들이 회사에 납입해야 하는 납입금도 채우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정을 알았기 때문이다. 목사 임직 예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용했던 택시에 작은 문제가 있었다. 필자는 택시를 이용하기 위해서 큰 대로변으로 나와서 ‘티 맵’(T map) 택시를 호출했다. 마침 그 주변을 지나던 한 택시가 금방 호출에 응답했다. 10여 분을 기다리자 그 택시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한 그 택시는 필자가 가려던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와서 골목길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얼른 택시 기사 분에게 전화했다. “그냥 그곳 그 자리에서 기다리시라.” 그러고는 횡단보도를 건너 택시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 가서, 깜짝 놀랐다. 문제가 발생했다. 기다리던 그 택시가, 골목을 이용하는 차량들의 통행을 위해서 길가로 비켜서는 과정에서, 1미터 가량의 낭떠러지 턱을 보지 못한 채 뒤쪽 바퀴 하나가 빠지고 말았다. 애를 써 보았지만 자력으로는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견인차를 불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견인 비용이 팔 만원이라고 했다. 택시 기사 분은 한동안 망설이시더니 견인차를 불렀다. 복잡한 교통체증 시간이라 견인차가 현장에까지 오는 데 50분이 더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택시 기사 분은 “바쁘신데…다른 차를 이용해서 가시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직면해서 당황해하고, 하루 온 종일 일한 수입의 절반을 견인비로 써야 하는 그 난감한 상황을 외면하고 다른 차를 이용해 귀가할 수가 없었다. 마침 외투도 입지 않은 상태로, 그 택시 기사와 함께 찬 기운 바람 부는 길에서 한 시간 이상을 같이 있었다. 견인차가 뒤늦게 와서 견인한 다음, 그 택시를 이용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 시간 이십여 분 만에 겨우 택시에 승차할 수 있었다.
그 택시를 타고 출발하여 오는데, 그분이 스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십 년 택시 운전을 했는데 이런 손님 처음 만났다”며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필자는 택시에 승차하면서 그 분에게 말씀드렸다. “견인 비용 팔만 원 중 오만 원은 제가 드릴께요. 저를 태우러 오셨다가 어려움 당하셨는데 제가 많이 미안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 견인 비용 팔만 원을 전부 다 부담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요즘 지갑에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신용카드 이외에 수중에 현금이 없었다.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어났던 상황을 짧게 이야기하고는 집 앞에 도착하기 삼 분 전에 전화하면 현금 오만 원을 가지고 좀 나와 달라고 부탁했다. 집에 가까이 오면서, 필자가 섬기는 교회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제야, 그 기사 분에게 여기 ‘정릉교회 목사’라고 신분을 밝혔다. “오늘, 저 때문에 고생하셨다. 손해가 많으시다. 많이 송구하다”고 재차 말씀드리니, “아니, 제 잘못이지요!” 하셨다.
집 앞에 도착해서 견인비 오만 원을 현금으로 드렸다. “목사님 돈 받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 고마워하셨다. 코로나 상황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 기사 분을 축복해드렸다. 논설보다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인 목사의 삶의 한 단상(斷想)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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