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지금 한국 사회는 흔히 4차 산업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지능정보 사회의 급진전 속에서 ‘코로나 19’ 팬더믹이라는 재난의 시대를 맞았다. 기술의 변혁만으로도 사회는 커다란 변화에 직면하는데 재난의 시대가 겹쳐 실로 힘든 고통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공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을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통신 기술이 많은 분야에서 ‘하이브리드’(hybrid) 하고,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추세로 설명한다. 동시에 그 결과로서 생산은 유연해지고 커지겠지만, 동시에 이와 관련된 심각한 실업, 정치사회적 불안, 환경 문제와 자연 재해 등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지능정보사회가 깊어지면서 *‘에코 챔버’(Echo Chamber)와 **‘필터 버블’(Filter Bubble) 효과와도 깊이 관련된 것으로 보이지만,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무시해버리는 폐쇄적 인식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은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뒤 전 세계로 확산된 호흡기 감염질환이다. 언제 종료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시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더욱이 비대면 상황, 진단과 확인 등의 방역 과정에서 개인 정보와 인권에 대한 침해, 자유의 위축, 실업과 양극화 등의 문제로 우리에게 고통을 더하고 있다.
즉, 한국 사회는 시대적 전화기에서 실업과 양극화, 개인의 보호와 자유의 위축 등과 같은 새로운 갈등 상황을 배태하였고, 자기 확증이나 폐쇄적 인식 경향으로부터 많은 시민들이 소통의 단절과 상대 진영의 의견에 매우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심각한 문제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심각한 것은 전환기적 고통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념과 정치 사회적 갈등’의 증폭이다. 이는 자칫 사회적 분열을 극으로 치닫게 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러한 갈등의 해결은 우리 시대에 시민이 행동으로 풀어야 할 중요한 과업이다.
물론 시민의 행동에 전제가 되는 시민성과 관련하여서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여러 갈래로 논의될 수 있다. ‘자유주의적 시민성’은 개인의 사적 자율성과 권리로서의 시민권을 강조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요청하지만, 공동체에 대해 ‘부담이 없는 자아’를 전제한다. 이에 대해 ‘공동체주의적 시민성’은 개인을 공동체에 ‘부담을 지닌 자아’로 이해하고, 공동선을 지향하는 참여를 촉구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은 우리의 신념이 사실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 전제하고 이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비판적 시민성을 강조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사회에 대한 주류적 사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민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대해 유동적이고 다형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각한다.
여기서 개인 시민이 어떤 인식을 지니는가는 그의 실천 행동적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 이에 따라 사회 문제와 갈등의 해결 방식이나 극단적 보수와 진보 사이에 있는 다양한 정파에 대한 선호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선호는 인간이 만드는 구체적 실천 행동이란 점이다. 이는 하나님의 권세에 대한 인정이나 이웃사랑과 섬김이라는 교회 정신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집단적 이익이나 이해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재난지원금의 지급이나 기본 소득 등의 논의과정에서도 이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지능정보사회와 재난의 시대라는 전환기적 시대의 한복판에서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인가?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자세와 관련하여 우리 생각에 기초가 되어야 할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교회와 국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바”(롬:13-1)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선 하나 제안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현실적으로 행동하는 실천인으로서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한 편이 아닌 그 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 11장의 세례 요한의 질문에 답하시는 과정(마 11:2-6)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이 보이신 태도와 교훈에서도 명백하다. 예수님은 현실 정치의 행동적 선택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며 믿음과 구원 그리고 복음을 말씀하셨다. 또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돌려보내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보낼 것”(마 22:21)을 말씀하신 것도 마찬가지 의미이다.
또 하나 언급할 수 있는 것은 현실 사회에서 발생하는 행동이나 일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초월적 성찰’을 이루어내는 일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정치사회에서 나타나는 ‘자기 선호적 폐쇄적 인식’ 경향으로부터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칼뱅의 <기독교 강요>에 따르면 이는 우리 자신을 일깨워 하나님을 찾게 하는 것이며,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교만(驕慢)은 인간 본래의 특성이어서 우리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판단의 표준이신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결단코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완벽하게 보이는 것도 하나님의 순결에 비하면 그 자체가 죄임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한다.
아마도 마음의 고백과 성찰은 이러한 주체성 회복의 전단계(前段階)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신이 선호하는 집단에 대해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내 집단은 상대 집단을 어떻게 판단하고 정죄하려 하는가? 내 집단은 상대 집단에게 무엇을 얻으려 하고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그러한 것들은 참되고 선한가? 이러한 질문 과정에서 우리는 진리(빛, 光)를 두려워하고 상대를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어쩌면 화평(和平, 마 5:9)한 사회를 위한 노력을 배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한국 사회와 기독교를 더욱 풍부하게 할 것이며 현실 사회에서도 고통 속에 내재해 있는 부정의 긍정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명사회로 나아가는 초석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 ‘에코 챔버’(Echo Chamber) 효과는 소셜 네트워크 등에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같은 정보와 아이디어를 서로 돌고 돌리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는 일종의 확증편향이다.
** ‘필터 버블’(Filter Bubble) 효과는 개인 검색 결과물의 하나로 웹사이트 알고리즘이 선별적으로 어느 정보를 사용자가 보고 싶어 하는지 추측하여 자기만의 문화적, 이념적 거품에 갇히게 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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